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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순간들로 사랑의 시간을 인수분해하다.

∫행복 dt + C = 사랑

by 지훈


스쳐가는 순간들로 사랑의 시간을 인수분해한다는 표현은 한 번 듣고 지나치기엔 참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화양연화」를 보고 남긴 글귀라고 하니, 그 문장에 담긴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화양연화라는 말 자체가 꽃 같던 시절,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아주 짧은 시간 속에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순간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랑 역시 그렇게 인지한 순간들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주)동아사이언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자신을 내보이고, 상대방도 역시 기꺼이 자신을 내비치는 순간, 그것이 ‘우리’라는 관계의 시작점이 된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의 작은 대화, 시선 교환, 함께 보내는 순간이 점차 쌓여가면서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사랑이란 이름의 함수는 그렇게 많은 순간들이라는 변수로 구성된다. 두 사람의 가치관과 살아온 환경, 때로는 사소한 다툼이나 거창한 여행, 혹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저녁식사에서조차 우연히 포착되는 의미가 이 함수의 항을 늘려간다. 그 항들의 합이 곧 둘만의 관계라는 독특한 함수를 만든다. 나와 너라는 개별적 존재가 서로 만나서 발생시키는 이 함수는 시간에 따라 형태가 바뀌며, 사랑의 기울기는 끊임없이 변한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우리는 인생 자체를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 형제, 친구, 사회나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내 삶이라는 함수가 형성되고, 또 거기에 새로운 항이 더해질 때마다 나라는 존재의 모습도 달라진다. 육체적인 나는 한계가 있어서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내가 관계 맺어온 소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한, 나와 그들이 함께 만들어온 의미들은 계속 변주되고, 이어진다. 사랑이라는 함수 역시 마찬가지다. 수학 공식처럼 딱 부러진 형태를 기대할 순 없지만, 사람마다, 관계마다, 그 기울기와 형태가 다 다르면서도 역시 시간이라는 축을 따라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누군가가 말하는 ‘화양연화’는 제삼자가 보기엔 아무리 극적인 순간이라 해도 결국 타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도 절절한 의미를 지닌다. 흡사 영원 같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서인지, 그들은 그 찰나에 혼신의 감정을 쏟아붓는다. 꽃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피어 있을 때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날지 모른다고 인식하면서도 그 순간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렇듯 부질없이 지나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사랑을 정의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짧은 상수 같은 순간들로만 이뤄진 함수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계단식으로 올라가거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급격한 기울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 사랑의 기울기가 내려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파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울기가 어느 방향을 향하든, ‘함께 만들어낸 항들의 집합’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누군가가 말하는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 규정한 사랑의 기준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모두에게 다르듯,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 경험의 결론도 제각기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이 그 순간에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의미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태도 자체가 사랑이라는 함수를 받아들이는 가장 온전한 방식이 아닐까.


결국 사랑이라는 함수가 어디로 귀결될지는 누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값을 부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 시간들은 지나가고 나서야 화양연화로 기억될 수도 있고, 그마저도 어떤 이에게는 사실 관성이 지난 뒤의 아쉬움일 수도 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순간마다 우리에게 특별한 변수들이 주어지고, 우리는 그 순간들을 낱낱이 만끽하다가, 지나간 시간을 인수분해하며 그 의미를 곱셈하듯 찾아 나간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스쳐가는 순간들의 의미가 모여 궁극적으로 화양연화를 이룬다 해도,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처럼 한때 피어나고, 언젠가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들을 제대로 누리고, 또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값을 남겨두는 것. 인간이 사랑이라는 함수를 그려나가는 과정은 바로 그런 것이다. 관계는 변하고, 변수는 변하며, 함수의 형태가 바뀌어도 그 모든 과정을 겪는 우리가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변수를 창조해 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행복’을 시간에 따라 적분해 얻은 결과가 사랑이라는 결론도 가능할 것이다. ∫(행복) dt = 사랑. 하지만 정교하게 따지면, 여기에 적분 상수 C가 필요해진다. 이 C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의 상태 혹은 운명적 요소처럼,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인연, 그 사람과 나만의 특별한 관계를 좌우하는 불가해한 요소를 상징한다.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적되는 ‘행복’이라는 값에, ‘C’라는 시작점이 더해져서 우리만의 독특한 사랑이라는 방정식을 완성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사랑이 단순히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의 행복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아무리 행복을 오랫동안 쌓아도, 처음 관계를 맺을 때의 상황이나 서로 마주쳤던 타이밍, 특정한 계기 등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함수를 완벽히 해석하려 애써도, 무언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남아 있는 듯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분을 “C라는 상수”로 남겨두는 것이다.


바로 그 불가사의한 부분이 사랑을 더욱 다채롭게, 또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적분 상수를 “누군가와의 첫 만남의 떨림”이라 부르든, “운명”이라 부르든, “인생의 우연”이라 부르든, 결국 그것은 함수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변수가 되어 사랑을 한층 더 풍부하게 완성한다. 그리고 그 미묘한 상수 덕분에, 우리는 인생이라는 방정식을 무한히 해석해 나가면서도 쉽게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스쳐가는 찰나의 경험조차, ‘나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생각하며 감사히 받아들이면 좋겠다. 각각의 미세한 항이 모여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방정식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 방정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때로는 외부의 관찰자가 해석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일지라도, 그걸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감동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화양연화는 결국 그런 순간들의 합이고, 그 합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라는 함수의 어떤 귀퉁이에서 빛나고 있는 우리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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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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