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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Apr 10. 2016

솔직해져서 슬픈 여우 한 마리

서울 여행 감상

서울로 여행을 갔다. 5년 동안 놀고 공부하던 곳이지만, Airbnb로 방을 예약했고, 떠날 날이 정해져 있으니 다른 단어를 고르기엔 영 멋쩍다. 


솔직해지고 있다. 근 1년간 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솔직해진다는 건 여행할 때 참으로 중요하다. 떠날 날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가장 즐겁거나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솔직하지 못하면, 비싼 비행기 티켓값을 치르고도 관심 없는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교환학생 가서 했던 실수를 또 할 수는 없다.


8개월 만에 서울을 갔더니, 감사하게도 지인들이 친히 연락을 해줬다. 지방으로 출장을 갔는데 보자고 급하게 와준 친구가 있었고, 시간이 어렵다고 했더니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 친구도 있었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생각했던 것만큼 즐거웠다고 하기는 어렵다. 꼭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보자고 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에 휩싸였던 적도 있었다. 내가 왜 만나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고, 이 사람과는 딱 이 정도까지 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4달 전에 호주에 있는 호스텔에서 3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분이 있다. 그 뒤로 한 번도 뵙지 못했는데 간간이 연락이 닿는 게 신기하다. 사람 대하는 데에는 보통이 아닌 분인 듯하다. 연남동에서 벚꽃 맥주를 마시는데 맛있어서 "나중에 서울 오면 먹어봐요"라고 했더니 "누가 같이 가줘야 먹죠~"라던가, 카톡으로 전화번호를 알려달랬더니 "관심 있었으면 진작 아셨을 텐데~?"라던지.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직접 본 건 3시간밖에 안되는데 아직까지도 드문드문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당장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간단하게나마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게 신기했다. '다음 휴가 때 대구와요'라는 말에 피식하다가 순간 내가 약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나에게서 무엇을 얻기 위해 연락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셈이 늘었다. 사람을 만나는데 '왜?'라는 질문을 하고, 이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할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내가 셈을 한다고 생각하고 나니, 나에게 셈을 하지 않는다고 내가 믿는 바로 그 사람들이 고맙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고마울 수가 있다니. 같이 있으면 셈 없이 순수하게 즐거운 사람도 있다. 분명히 있다.


이번 휴가는 가슴을 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산수는 곧잘 하지만 여기서는 말자.

셈을 해서 슬픈 여우 한 마리가 제 손으로 가슴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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