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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May 25. 2016

참치 대뱃살 초밥 맛보기 - 글맛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카피책>, <대통령의 글쓰기>  맛보기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의외로 이런 게 아쉽다.

대학생 때 잘 읽고 잘 듣고 잘 쓰고 잘 말하는 법을 익혀둘 걸. 국어랑 영어로.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유난히 어색하다. 글쓰기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글쓰기 고수들이 뭘 말하는지 읽어봐야 성이 찬다. 아쉬운 마음에 목차와 서평이라도 훑어본다. 목차 보면 더 궁금해서 며칠 못 견디고 결국 산다.


좋은 책은 참치 대뱃살 초밥이다. 한 권 한 권 쥘 때마다 글 맛을 진하게 본다. 그런 의미에서 귀한 초밥 하나씩 앞접시에 쥐어드리려고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똑똑한 동네 형


JTBC에서 하는 '썰전'을 꼭꼭 챙겨본다. 유시민 작가님이 워낙 말씀을 조리 있게 잘 하시기에 그 비결이 궁금해서 이 책을 봤다.

유시민 작가님이 글쓰기 책을 쓰신 줄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강"이라는 표현이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있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역시 제목 짓기는 어렵다.


이 책은 '좀 많이 똑똑한 동네 형'이 참 밝은 동생들을 페리카나 양념치킨 2마리로 꾀어서 앉히고는, 옛날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난다.

당신께서 직접 겪고 느낀 것을 담백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더하고 덜함이 없다. 조금 다듬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거스름이 없다. 딱 내가 짓고 싶은 글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 스토리의 승리.


제목이 연설문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대통령"의 글쓰기이다. 다른 책과 달리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해 서술했다는 점이 독자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 남과 다른 스토리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 느꼈다. <유혹하는 글쓰기>와 <대통령의 글쓰기> 중 어느 책을 살지 고민하다가 이 책을 샀기 때문이다. "유혹"보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독자에게는 더 매력적인 셈이다.


먼저 읽었던 회사 선배에게 이 책에 대해 물었더니, 정치색을 띄어서 거북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카피책> - "키야 글 맛난다!"


레몬 2조각, 각얼음 3개 넣은 탄산수 한 잔이다. <총, 균, 쇠>를 읽고 나서 좀 경쾌한 글이 읽고 싶었다.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라는 소제목에 혹해 골랐는데 참 잘했다. 통통 튄다. 읽는 내내 참 기분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글맛이 난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 매봉터널을 북에서 남으로 지나오면 바로 오른쪽에 달랑 한 동 솟은 아파트,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남향이라 햇볕이 잘 들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대기업이 아파트 코앞에 고층 스포츠센터를 세운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아파트 앞에 커다란 벽 하나가 세워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민들은 결사반대를 외쳤습니다. (...) 대기업 횡포를 고발하여 우리 아파트에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현수막을 붙이자고들 했습니다. 나는 등 떠밀려 현수막 카피를 써야 했습니다. 뭐라고 썼을까요?

초고층 스포츠센터 건립 결사반대!
아파트 코앞에 초고층 빌딩이 웬 말이냐!
시민 삶 짓밟는 누구누구 각성하라!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카피는 처음부터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의 집단 이기주의로 보이기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항, 분노, 투쟁 대신 엉뚱하게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

이 카피를 가슴에 품은 현수막이 아파트 키만큼 길게 걸렸습니다. (...) 결국 스포츠센터는 햇볕을 가리지 않을 만큼 정말 한 뼘 옮겨 지어졌습니다."


참치 대뱃살 초밥 하나 잘 맛봤다. 고급진 기름으로 혀를 기분 좋게 감싸는 느낌이다. 귀한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은 그런 맛이다.


글맛을 실컷 음미한 것 말고도 다른 소득이 있다. 태어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표현이라는 걸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내 주의를 한껏 당긴 건 이 부분이다. 도입부의 한 부분이다.


"(...) 나는 카피라이터가 될 건 아닌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카피든 에세이든 연애편지든 사람 마음을 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모든 글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


일할 자리 하나 얻기 위해 자기소개서 쓸 때,

볼 때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친구에게 선물과 함께 짧은 메모를 남길 때,

페이스북에 심심풀이로 글 남길 때,


그때 차마 쉽게 휘갈기지 못했던 이유는 내 표현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심만큼이나 표현이 중요하다. 좋은 표현이 있으면 끄적거려도 보고 곱씹으면서 기억해놔야겠다.



세 권 모두 상급 참치 대뱃살 초밥이다. 좋은 작가님을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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