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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굿뉴스

실화에 갇혀 펼쳐지지 못한 블랙 코미디

by 구르미

일요일 오후 5시, 예정된 일정은 다 끝났고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보내는 시간. 아이는 친구랑 논다고 나갔고, 와이프는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다. 뭘 할까 하다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TV를 켜고 넷플릭스를 실행시킨다.


목적 없이 넷플릭스를 켜면 예고편을 보고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3~40분 지나는 건 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미리 보기로 한 영화가 있어서 바로 검색해서 감상을 시작했다.


바로, 설경구 주연의 '굿 뉴스'


출처 :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

넷플릭스 영화 굿 뉴스는 1970년대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항공기 납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처음엔 ‘그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재해석할까’ 하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화’가 영화의 신선함을 제한한 요소로 느껴졌다.


실화와 영화의 간극


이 작품은 1970년 일본항공 여객기 납치 사건, 일명 ‘요도호 사건’을 토대로 한다. 젊은 좌파 청년들이 이상을 외치며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했던 사건이다. 영화에서도 유사한 설정을 취하지만, 등장인물 이름이나 항공편 명칭은 모두 바뀌어 있다.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속이는 작전, 혼란스러운 정부의 대응, 그리고 내부 정치적 셈법이 얽힌 장면 등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블랙코미디적 과장과 허구가 덧입혀졌다. 현실보다 더 극적이고, 때로는 우스꽝스럽다. 감독이 풍자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 균형이 늘 매끄럽게 유지되진 않는다.


웃음을 택한 풍자, 그러나 억지로 느껴지는 순간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설경구, 류승범, 홍경은 각각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며 블랙코미디의 묘미를 잘 이끌어냈다. 관료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서로 책임을 미루는 장면에서는, 웃음과 불편함이 교차했다.

다만 그 풍자가 지나치게 ‘만들어진 웃음’으로 느껴지는 대목도 많았다. 유머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보다는, 관객이 웃어야 할 타이밍을 지정해 둔 듯한 인위적인 리듬이 있었다.


특히 영부인 역할의 전도연이 나왔을 때가 억지스러운 면이 많았다. 숙취 때문에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신 왔다는 설정은, 3류 블랙코미디 느낌을 내기에는 충분했는데, 굳이 저런 설정이 필요했나? 싶은 억지감이 들었다. 물론 이전 대통령을 디스 하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이미 그는 떠났고, 이 떡밥은 신선하지 않게 됐다.


또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풍자의 화살은 지금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허술한 위기 대응, 언론의 프레임 의식, 상부 보고에 급급한 관료들의 모습은 1970년대보다는 지금의 사회를 더 닮아 있다. 감독은 “그 사건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고 싶었다”라고 말했지만, 그 의도가 너무 직접적이다 보니 시대극으로서의 리얼리티가 희미해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그때의 이야기’보다 ‘지금의 뉴스’를 떠올리게 된다. 문득 몇 년 전 이태원 참사나 얼마 전 전 세계적으로 창피당했던 잼버리가 떠올랐다.


분명 맞는 말이긴 했지만, 감독의 의도가 너무 앞서서 이야기가 억지스러워졌던 점이 아쉬웠다.


‘돈 룩 업’과의 비교, 풍자의 밀도 차이


비슷한 결의 작품으로 최근에 재밌게 봤었던 블랙코미디였던 디카프리오 주연의 돈 룩 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천문학자들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하지만, 정부와 언론, 대중이 이를 정치적 이슈로만 소비하고 최근에 가장 큰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는 갈등과 편 나누기로 확장시켜 결국 인류가 파멸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지만 위를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현대 사회의 갈등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돈 룩 업은 현실을 정면으로 비틀며, 과학·정치·언론이 뒤엉킨 현대사회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반면 굿 뉴스는 실제 사건이라는 틀 위에 풍자를 얹었지만, 그 틀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다. 실화를 충실히 따르려는 태도가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도를 제한한 셈이다. 관객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고, 그래서 반전이나 긴장감보다는 “그렇게 됐겠지”라는 예측이 앞선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의 장점이, 역설적으로 단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어차피 영화인데, 내용을 조금 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서 일본과 전쟁을 하자고 한다던지? 아예 내용을 몰랐던 이야기라면 흥미 있었겠지만, 실화를 아는 이상 큰 흐름이 너무 뻔했다.


실화의 무게, 풍자의 방향


최근 방송 프로그램 ‘꼬꼬무’에서도 같은 사건을 다룬 바 있다. 그래서일까, 굿 뉴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이미 본 장면들이 영화 속에 반복되며 참신함이 반감됐다. 오히려 '꼬꼬무'에서 이념을 위해 숨겨진 영웅을 소개했던 점이 더 감동적이고 재밌었던 것 같다.

물론 블랙코미디로서의 시도는 가치 있다. 웃음을 통해 권력과 무능을 비판하고, 사회의 이면을 비추는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 웃음이 너무 계산되어 보일 때, 그 풍자는 힘을 잃는다.


래도 넷플릭스스럽게 평타는 쳤던 영화


굿 뉴스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풍자극’이라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모두 지닌다. 배우들은 훌륭했고, 연출의 방향성도 명확했다. 다만 실화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영화의 유머가 가벼웠고, 풍자의 칼날은 예상보다 무뎠다.

“그 시대를 빌려 오늘을 비추려 했지만, 결국 그 시대의 그림자에 갇혀버린 영화.”

이 한 줄로 굿 뉴스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느 넷플릭스 영화처럼 보면서 재미는 있었다. 여운이 남지 않아서 안타까웠을 뿐


구르미 평점 : 3.5/5 (내용은 뻔했지만 대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재미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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