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어른도 직장인도 그리고 나도 관심이 필요해
일요일 새벽 4시, 격렬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예전엔 길게 쭉 이어서 잘 잤는데 최근엔 잠은 일찍 들지만 꼭 새벽에 꿈을 꾸다 깬다. 생생한 꿈일수록 약간의 두통과 완전히 잠을 깨는 경우가 많다. 이게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노화의 한 신호인가?
한결같이 아침잠이 많은 아내를 보면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하며 침대를 나와 거실에 조그만 티테이블에 앉아 본다.
오늘 꾼 꿈은 유난히 기억에 잘 남았다.
어느 연구소에서 내가 머리에 뭘 뒤집어쓰고 검사를 받았는데 화면에 그래프가 나오고 당신은 이렇게 까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약간 뒤처져 계시네요. 지금 어떤 걸 하면 다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으니 앞으로 이런 걸 하세요.
아주 과학적인 개인 코칭이었다. 내 지금 상황이 어떤지가 나오고 심지어 내가 뭘 해야 할지 까지 나오다니.. 딱 내가 원하는 것이어서 엄청 신나 했다.
깨고 나서 사람에게 받고 싶었던 코칭과 상담과 관심을 결국 기계한테라도 받으려는 내 자아가 왠지 측은하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 참 관심이 그리웠다. 부모님이 나에게 애정을 주지 않고 매정하게 키우셨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시기가 그렇듯 부모님은 항상 돈과 시간에 쫓기셨고 사랑은 있었지만 아이를 위한 시간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날 챙겨줬음 하는 바람이 많았지만 어린 나에게 그건 착한 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투정 같은 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냥 혼자서 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한 번은 요리 수업에 개인 접시를 가져오란 선생님 말씀에 커피잔 받침을 들고 갔다가 웃음거리가 됐던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저녁 늦게야 오셨기에 초등학생인 난 알아서 동생과 함께 밥을 챙겨 먹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냥 보이던 대로 그릇을 썼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커피잔 받침을 그냥 접시처럼 썼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생긴 웃픈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거 외에도 참 어이없는 일도 창피한 일도 많았는데 그런 게 쌓이다 보니 배우다 어른이 된 것 같다. 누군가 도와줬다면 더 쉽게, 더 높게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뜻하지 않게 아이에게 투영되어 더 극성스러운 부모로 만들었다.
매일 아이에게 씻고 로션 바르고 선크림도 발라라, 양치할 땐 구석구석 이렇게 해야 한다, 아침에 영양제도 먹어라, 옷은 이렇게 하고, 신발은 이렇게 하고, 친구 누가 이번 주 생일이니 선물 뭐 받고 싶은지 물어봐라, 선생님이 알림장에 뭐라고 쓰셨으니 이거 준비하고, 이번 주에 단원 평가이니 이거 공부해야 하고, 영어 학원 숙제는 이따 나랑 같이 하자...
어쩔 때 생각해 보면 극성스러운 요즘 부모가 아이를 너무 아바타화해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끝없는 잔소리와 참견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나에게 해주고 싶은 불만족의 반대급부가 아닐까도 싶다. 또한 지금 내가 받고 싶은 누군가의 내 맞춤형 관심의 거울 외침일 수도 있다. 나도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누군가 날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 같은 40대 중반에게 이런 조언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드물다.
집에서는 당연히 이런 관심은 아이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배우자에게 이런 걸 원하기엔 서로의 관심의 우선순위가 아이로 향해있고 서로의 일과 고민에 대해 완전히 다 알 수 없기에 괜한 참견과 조언이 뜬금없는 헛소리일 수 있어 정서적인 걸 제외하곤 불가침하는 것이 암묵적인 부부의 규약으로 된 지 오래다. 간단히 말해 잘 모르면 토 달지 말란 서로 간의 경고랄까?
내 부모님이야 다시 아이처럼 내가 관심을 드려야만 하는 입장이니 또 번외가 된다.
회사에선 중간 관리자로서 일의 방향을 정하고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해 당연히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지시받는 입장에서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다. 괜히 불안한 낌새나 조언을 구했다간 내가 저 사람 말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 오히려 내 말발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난 잘 아는 사람, 목표가 확실한 중간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 위에 사람이 나에게 관심과 조언을 줄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비슷한 연배이지만 성과를 인정받아 앞으로 나아간 사람으로서 중관관리자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지시는 관심 보단 무시로 보일까 걱정이 늘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배려 아닌 배려로 당신을 인정하니 알아서 잘해주세요 하는 책임 떠넘기기가 시전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 일이 그르쳐지더라도 "당신을 믿었는데 아쉽네요. 이제 당신은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탈락입니다." 라며 자신과 선긋기와 꼬리 자르기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친구들도 다들 나처럼 가족과 회사의 등쌀에 서로를 챙길 겨를이 없고..
결국 날 챙겨줄 사람은...
나밖에 없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내가 좀 더 커졌다는 것?
어디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이젠 좀 잘 알고, 금쪽 상담소 같은 명쾌한 답은 못 주더라도 삶의 연륜으로 그나마 합리적인 답은 찾을 줄 알고, 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화를 어떻게 피할 수는 있다는 걸 이제 좀 알게 되긴 했으니 말이다.
자욱이 안개가 뜬 하늘 너머로 스멀스멀 떠오르는 해가 보인다. 괜한 꿈 덕분에 즐기는 흐릿흐릿 아침 일출. 언젠가 맑은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