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다른주식회사 소재용 인터뷰
환대는 거저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예술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조금다른주식회사’의 옷깃을 스친 전적이 있으리라 감히 예상한다. 조금다른주식회사는 학교에서, 미술관에서, 공연장에서, 그리고 운동장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는 환대의 공간을 꾸리는 곳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 따뜻함과 세심함, 그리고 즐거움을 잊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매개자로서, 비장애인으로서 환대를 실천하는 사람은 무엇을 갖추고 무슨 마음을 입고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다는, 그것마저 편견임을 생각지도 못한 채로 푹 더운 날씨에 탁 트인 의왕에서 조금다른주식회사(이하 조금다른) 소재용을 만났다.
1. ‘조금다른주식회사’의 소개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금다른은 초반에는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접근성 작업을 이어오다가 최근에는 문화예술 현장뿐 아니라 접근성이 필요한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 작업을 해가고 있어요. 2016년에 회사 생활을 싫어하는 사람 셋이 모여서 ‘조금다른 운동회’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일을 벌여 나갔어요. 그러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만들게 됐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활동해오고 있어요.
저는 소똥(소재용)이라고 하고요, 소셜섹터에서 일을 해왔어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일’에 관심이 많고 그걸 재밌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20대 초반에는 소셜벤처 쪽에서 일을 하다가 이후에는 제가 있는 동네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제가 대안학교를 졸업했는데 같은 학교 선배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청년 공동체를 꾸렸고요. 충현도 학교에서 만난 친구예요.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벌여보자는 취지로 ‘청년협동조합 뒷북’을 만들었고 운영하는 일을 맡게 됐어요. 그걸 이어오다가 지금의 조금다른까지 오게 됐어요.
2. 처음 접근성 기획을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기획자로서 우리 몸의 감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충현이 2021년도쯤에 ‘접근성 매니저’라는 직책을 제의받아 활동을 했어요. 저도 그 당시엔 접근성에 대해 잘 몰랐고요. 그런데 충현이 그 역할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이나 생각들을 저희 안에서 많이 나눠줘서 그때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타임라인이 좀 섞일 것 같은데, 저희가 뒷북 활동하면서 ‘뒷동네 보드게임방’ 모임을 운영했거든요. 지금도 저랑 충현이 같이 하고 있는 놀이 모임인데, 장애·비장애 청년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같이 노는 자리예요.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발달장애인이 지역 이웃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일터, 쉼터, 배움터를 만드는 '쉐어블프로젝트'라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모임을 처음 기획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장애 청년들은 삶의 루틴이 되게 명확하거든요. 집-회사나 복지관-집 같은 식으로요. 반면 비장애 청년들은 그 사이에 선택지가 무수히 많잖아요. 카페도 가고, 술집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러다 보니 장애 청년 입장에서는 비장애 청년을 만날 접점이 거의 없는 거예요. 공간도, 안전한 환경도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뒷북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같이 모여서 노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때 놀이 모임을 만든 거예요. 그리고 그게 충현이 접근성 매니저 활동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들과 맞물리면서 저희 안에서도 의미가 확장된 것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구나” 확 느꼈던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잖아요. 단순히 누군가를 위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서로 만나고 잘 지내기 위한, 그런 환대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이건 그냥 누군가를 위한 ‘좋은 일’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관점이 달라졌다고 느낀 건… 저 역시도 되게 다양한 사람들을 일상 속에서 지워내거나 배제했던 순간들이 막 떠올랐을 때인 것 같아요.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 어렵잖아요. 근데 그게 내가 못 봤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서 편하게 이동할 수 없는 환경이나 다양한 장벽들 때문에 만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에서 잘 만나기 위한 방법들이나 태도들을 계속 배워 나가는 것 같아요.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즐겁게 알아가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저를 기준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는 현재 비장애인에 흔히 말하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몸이 너무 기본값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조금다른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여전히 사회는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몸을 기준 삼아 다른 몸을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껴요.
3. 배리어 컨셔스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있으신 거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전히 당사자분들은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접근성 기획을 진행하시면서 이러한 현실을 더 절실히 체감하실 것 같습니다. 작업에 임하실 때 어떤 점을 가장 경계하고 염두에 두시는지, 그리고 그 다양한 감각과 경험들을 어떻게 아우르며 기획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일할 때 지키고 있는 원칙이 몇 가지 있어요. 먼저, 접근성은 서비스가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이다. 이건 저희 내부뿐 아니라 협업하는 분들과도 반드시 공유하는 부분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일을 시작할 때 함께하는 이해관계자들과 접근성 교육을 진행하고, 그 감각을 나누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배리어’라는 것이 고정적이지 않잖아요. 배리어는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만 있는 게 아니라, 관계나 개인의 상황,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견지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팀에서도 이 관점을 공유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업자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를 먼저 여쭤보기도 해요. 저는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장에서 저희도 그렇고 의뢰자도 걱정을 많이 하세요. “예산은 한정적인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괜히 잘 못 하면 욕만 먹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죠. 그럴수록 하나라도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를 많이 격려하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으쌰으쌰 하며 일하는 편입니다.
4. 청각 중심의 정보 전달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감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시나요?
작업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세팅하기 이전에 어떤 접근성 요소를 만들고 준비해야 할지 기획하고 제안하는 편이고요. 그 기획을 바탕으로 접근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둘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각 현장마다 한정적인 예산과 컨디션이 있기 마련이라 그 안에서 최대한 구현할 수 있게 조율하고요. 특히 수어통역의 경우에는 단순히 수어통역사를 섭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공연을 수어로 어떻게 잘 전달하고 보여줄 수 있을지’를 논의하면서 작업해요. 통역이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분이자 감각의 한 층위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을 하는 거죠. 저희는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매개자인 셈이라 중간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조율하고 전달하는 작업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5. 예술 현장 안에서 ‘듣는 감각’이 중심이 되지 않을 때, 오히려 확장된 감각의 경험이 가능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조금다른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농인 분들을 만날 일이 많은데, 저희는 수어를 하지 못해서 필담으로 소통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그 방식도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9월부터 수어를 직접 배우기 시작했어요. 수어는 단순히 또 다른 언어일 뿐 아니라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경험이었어요.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언어다 보니 표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농인 분들은 실제로 눈치도 정말 빠르세요. 농인들 사이에서는 수어이름을 부르는데 저는 ‘조용한 남자’거든요. 말수가 적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농인 선생님께서 그걸 단번에 캐치하셔서 이름을 지어 주셔서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어요. 제 원래 성격 때문에 연기 수업을 받는 것 같기도 해요. 선생님에게 항상 표정도 더 쓰고 더 표현하라고 맨날 혼나기도 하고, 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라고 강조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말도 표현도 적은 편이라 아직은 많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그만큼 감각이 확장되고 있다는 걸 실감해요. 어렵지만 즐겁고 배우는 게 많습니다.
6. 예술 경험에서 ‘접근성’은 물리적 혹은 기능적 요소를 넘어서, 그 감각적 장치들이 관람자 개개인의 서사나 감정, 해석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획자님은 ‘관람자의 내러티브 형성’에 있어 접근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가장 최근에 했던 작업인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에서는 기존보다 한층 더 나아간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미술관 안에서 시각장애인이 독립적으로 관람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럼에도 시도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해서 미술관과 협의해 관람 동선에 보도블록을 설치해 보기도 했고요.
또 음성해설을 직접 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작가나 도슨트의 시선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해설’이 아니라 관람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감정의 서사를 따라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어요. 참고한 책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인데, 미술관에 가는 게 취미인 시각장애인 시라토리 씨가 등장해요. 함께 예술 관람을 하러 간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착안해서 시각장애인 관객과 그의 친구가 작품에 대해 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했어요. 관람자의 감상이 해설이 되는 시도였는데요, 재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저희도 작업하면서 재밌었고요. 새로운 경험이나 관점을 만들어 내다보니 관람자가 작품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넓히는 시도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더 많은 해석의 선택지를 열어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을 하나라도 더 할 수 있도록 계속 움직이려 합니다.
7. 장애인 당사자 모니터링이 활동에 있어 큰 도움이 되어 주실 것 같아요. 그들에게 주로 어떤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 다양한 접근 방식들을 설계할 때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나요? 예를 들면 의견 수렴, 공동 기획, 테스트 등 구체적인 방식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저희는 모든 작업에 있어 당사자 모니터링을 필수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이왕이면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함께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의뢰받는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또 작업들이 굉장히 촉박하게 세팅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실제로는 마감 직전 시점에 모니터링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아요. 너무 이른 시점에 하게 되면 기획이 구체화되기 전이라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고 너무 늦게 하면 이미 바꿀 수 없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항상 그 사이에서 타이밍을 고민하게 되죠. 그럼에도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모니터링을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니터링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은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저희가 작업하며 관계를 맺어온 분들이 우선적으로 함께해 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모니터링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때는 ‘필요해서 만나는 관계’ 같아지는 게 아쉬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모니터링 이상의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계속해오고 있어요. 당사자분들과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싶어서 아직 가안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조금다른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혹은 네트워크를 준비해 나갈 것 같아요. 접근성 작업에 관심 있는 동료, 예술가, 당사자분들을 조금씩 모아 다양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려는 계획이에요.
이런 구조가 생기면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함께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시도했던 작업도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연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 퍼포먼스 작업이었는데 이 작업은 연계 프로그램을 담당한 분들과 저희가 사전부터 충분히 소통하며 기획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관객을 위한 ‘기능적 장치’로서의 접근성을 넘어, 당사자의 감각과 시선을 공유하는 방식의 접근성으로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작업은 시간과 신뢰가 필요한 일이라 항상 급박한 일정 속에서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지만, 그만큼 앞으로 더 많은 준비와 구조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8.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모니터링단의 피드백은 아니지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피드백이 있어요. 접근성 행사를 진행할 때 저희가 운영하는 테이블이 있는데 그 자리에는 필담 기기를 비치하고 접근성 매니저도 상주해요. 그런데 한 번은, 필담 기기 위에 붙인 안내 문구에 ‘음성소통이 어려운 분들은 이 기기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적어둔 적이 있었어요. 당시엔 큰 고민 없이 쓴 문장이었는데 그걸 보신 수어통역사분이 바로 말씀해 주셨어요. “이 문장은 부정어구고,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요. 그 피드백을 듣고 바로 문구를 “필담 사용이 필요하신 분들은 자유롭게 이용해 주세요”로 수정했어요. 정말 작은 문장 하나였지만 그 디테일이 사람에게 주는 인식의 결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저희도 다양한 현장에서 배우고 반영하려고 하지만 이렇게 ‘디테일한 감각’을 지적해 주시는 순간이 현장에서 계속 등장하고, 또 계속 학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시각장애인 분들과 작업할 때는 점자의 사용 여부나 종이의 질감, 보도블록의 촉감에 대해서도 반응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은 장치를 두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기본’을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상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감각과 선호, 취향의 영역이 개입되는 것 같아요. 그 미묘한 정도를 잘 맞추는 일이 정말 어렵고, 또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계속 실감하고 있습니다.
9. 기획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외부 기관의 스태프 및 협력자들과 협업해야 할 때도 많으셨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이 불통은 구조의 문제였구나’, ‘이건 정말 전제가 다르구나’ 싶었던 불통의 경험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담당자분들과 협업 과정에서 불통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한 공연의 접근성 운영을 맡았고, 그 담당자님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이 부딪혔어요. 기업 내부의 부서가 각기 다르고 협업이 필요한 지점이 많았는데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것을 고려해서 사전 확인과 협조 요청을 반복했는데 실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당일에 공연을 보러 온 관객분들에게 큰 혼선을 주었어요.
그때 느낀 건 단순히 일정이 촉박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과 저희의 역할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에요. ‘이런 걸 한다’는 걸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고 정작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는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그 이후로는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접근성 작업과 관련한 공동의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0. 배리어 컨셔스 감각이 없는 사람들과 협업할 때는 그 감각을 어떻게 공유하거나 전이시키고 계신가요?
그 감각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공유하려고 해요. 저희가 직접 현장에 나가다 보니, 컴플레인이나 피드백이 발생했을 때는 그때그때 빠르게 소통하고 조치하는 편이고요. 꼭 접근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을 함께 고민해 보려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요. 물론 정답이 없는 경우도 많고, 저희 내부에서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당장 해결이 어려운 지점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지금은 어렵지만 이 의견을 다음에는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만남에서는요?) 어느 정도는 감각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주변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식점을 갈 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게 찾는다거나. 다행히 제 주변은 그러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같이 지내온 시간에서 쌓은 것들이 있어서 굳이 제가 먼저 알려주거나 이야기하지 않아도 비교적 편하게 만나는 것 같아요.
11. 당사자와 기획자 사이에서, 오히려 너무 조심하다 보니 진심이 잘 안 전해지거나 거리가 더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상대방을 조심스럽게 대하려는 태도가 강한 편인데, 오히려 그게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거나 거리를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이건 당사자 분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비슷하게 겪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각자마다의 ‘선’이 있고 그 선을 잘 파악하면서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심해야 할 지점은 당연히 조심해야 하지만 너무 조심하는 태도는 오히려 관계를 맺는 데 장벽처럼 작용할 수 있겠다는 걸 계속 실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늘 고민이에요. 이게 ‘존중’에서 비롯된 태도이긴 하지만 어떤 거리까지는 괜찮은가,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는가 하는 선을 찾는 일이 늘 어렵고,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도 늘 조심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을 스스로 탐색하고 조율해 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12. 미학 접근성 조율 과정에서도 창작자의 예술 의도와 상충하던 구체적인 순간이 있을까요?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조율과 절충의 과정이 필요해요.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와 충돌하거나 미학적인 요소와 접근성 장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희는 늘 제안하고, 설득하고, 또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곤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와 같이 협업한 경우에는 담당 학예사님의 태도와 의지 덕분에 조율이 훨씬 수월했던 기억이 있어요. 접근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셨고, 작업 전반에 있어 저희를 하나의 동등한 협업자로 존중해 주셨거든요. 그런 관계에서는 저희도 훨씬 편하게 제안드릴 수 있고 작업에 대한 고민이나 감각을 더 깊이 나눌 수 있었어요.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웹도록이 따로 있어요. 저희 대표 충현과 학예사님이 ⟪기울인 몸들⟫ 전시의 접근성 전시 준비 과정을 아카이빙 한 글이 담겨 있어요. 그 글을 통해 어떤 고민들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확인하실 수 있어요. 추천드리고 싶은 자료예요.
https://looking-after-each-other.neocities.org/
13. 불통의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기획자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회피하지 않고 ‘그사이에 머무는 법’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 회피하는 성향이에요. 가능한 끝까지 회피해보려고 하는 사람인데요, 하하. 불통이라고 했을 때 떠오른 건 작년에는 팀이라는 활동을 잘 못했더라고요. 저희 팀은 규모가 작다 보니 한 사람이 거의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담하다시피 하면서 진행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서로의 작업을 충분히 살피거나 챙기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 안에서 오는 피로감과 개인적인 어려움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면서 올해 역시 어쩔 수 없이 바쁘긴 하겠지만 팀으로서의 감각을 지키면서 가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이야기를 통해 회피 성향이 덜해지셨나요?) 전 최대한 끝까지 기다리고. 하하.
14.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결국 닿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아직은 해결하지 못했거나, 늘 마음에 걸리는 그런 감각의 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접근성 작업을 많이 해왔지만 여전히 저를 접근성 매니저로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접근성 매니저’라는 말 안에는 사실 굉장히 다양한 역할이 담겨 있거든요. 현장을 직접 운영하는 일도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중간 매개자의 역할, 즉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조율하는 일도 정말 크고요. 사전 기획 단계에서부터 설계해야 하는 요소들도 많아서, 접근성이라는 흐름 안에 존재하는 복잡한 레이어들을 혼자서 끌어간다는 게 아직도 버거울 때가 있어요. 사실 저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많은 일을 하셨으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은 있지 않나요? 아예 못 하겠다 이런 건 없으실 것 같은데….) 그건 평생 비밀입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분명히 있고 작업을 구상하는 감각은 확실히 생긴 것 같아요. 다만 현장은 언제나 예외의 연속이라, 머릿속에서 그린 것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 틈은 여전히 크다고 느껴요. 아마 그게 제가 아직까지도 늘 조심스럽고 완전히는 닿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지점인 것 같아요.
15. 소통이라는 단어엔 늘 주류적인 어떤 전제가 깔려 있잖아요. 빠르고 정확하게, 눈치껏. 그런데 기획자님의 작업에서는 ‘조금 다른 소통’이 예술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이 느껴졌어요. 기획자로서 ‘조금 다른 소통’을 어떻게 상상하고 구성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소통과 관련해서 저희는 단순한 기획자이자 실무자라기보다는 매개자 역할에 더 가까워요. 접근성 작업을 할 때는 연출자, 담당자, 수어통역사, 문자통역사 등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어떤 부분이 필요하고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해 디테일한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조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초반에는 필요 이상으로 사과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접근성 요소를 아예 배제하고 완성된 작품이나 콘텐츠에 저희가 중간에 개입하면서 기존의 준비 과정을 수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거죠. 그 속에서 사전부터 작업해 왔던 담당 실무자분들은 접근성 요소를 추가하는 일이 ‘추가 업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고, 저희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눈치 보고 쭈뼛거리면서 요청드리고…. 그런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너무 미안한 태도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이건 민폐 끼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고 눈치를 보면서까지 제안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거죠. 저희 작업의 의미나 필요성을 견지하면서 소통을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원체 스스로를 많이 낮추면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지만 이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저자세의 태도를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 나눴던 것 같아요.
팀 안에서도 사람마다 일의 진행 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 이해하고 기다리고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자주 나누고 있어요. 오늘 계속 “정답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외부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팀 안에서도 그 고민들을 놓치지 않고 잘 나누려는 태도가 저희에게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답이 없음으로 귀결되는 게 그게 맞는 것일 지도 모르겠어요. 모순인 것 같지만요.) 이야기하면서 덧붙이고 싶었던 거 있어요. 저희가 교육을 나가면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응대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사실 사람을 만나는 데에 절대적인 가이드란 없잖아요. 물론 기본적인 예의나 배려는 지켜야 하죠.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만날 때는 음성으로 명확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동행할 때는 한 걸음 앞이나 옆에서 팔을 내어드린다든지, 신체적 접촉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든지 하는 기본은 있어요. 하지만 함께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처럼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정해진 ‘정답’이 없어요. ‘반드시 오른쪽에 서서 오른쪽 팔꿈치를 내어드려야 한다’ 같은 절대적인 방식은 없는 거죠. 농인분들도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원하는 방식이나 감각이 다 다르고요.
그래서 중요한 건 내가 과거에 배운 가이드를 기계적으로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직접 대화하면서 무엇이 편한지,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싶은지를 묻고 함께 조율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감각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조금씩 쌓여가는 거라고 느껴요. 결국 이 일에서 저희가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은 “절대적인 가이드는 없다”, “정답은 없다”예요. 그 대신 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잘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소통이, 결국 가장 단단하고 유연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16. 접근성 매니징을 하시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말이 닿았다’, ‘마음이 이어졌다’고 느꼈던 본질적인 소통의 순간이 있으셨나요?
미학 접근성 조율 과정에서 상충됐던 순간의 질문이랑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리의 땅>이라는 연극 작업을 했거든요. 그 연극 같은 경우에는 객석을 무대로 활용했어요. 극 속 배경이 숲속인데, 폐쇄형 음성해설 만들 때 이곳을 숲속이라 해야 하는지 객석이라 해야 하는지…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식을 취할지, 객관적인 정보 전달을 우선할지 너무 고민되어서 연출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자주 이야기 나누는 성수 님과 근영 님 두 분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두 분께서는 극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이 좋다, 그러니까 숲속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의견을 말씀하시면서 “이게 토론 정도로만 이어지면 좋겠다”, “공연을 준비하는 작은 단위에서 이런 걸로 다투거나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말들을 해주셨을 때 많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다 보면 의견 차이로 부딪히고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많거든요. 그런 점들을 미리 걱정해 주시면서 “이건 좋은 고민이니까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해주셨을 때, 마음이 많이 닿아있다고 느낀 것 같아요.
17. 자막 서비스 제공 등 공연·행사 현장에서 접근성 매니징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조금다른 운동회’처럼 당사자와 비당사자 사이의 위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셨을 때 그 위계에 금을 내는 가능성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는 장애인식개선교육 형태로 수업을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체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도 반응은 정말 제각각이에요. 조금다른 내부에서도 늘 고민하는 건 단순히 ‘장애를 체험’하는 식이 아니라 다른 감각을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그 못지않게 일상적으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에 있어요.
얼마 전 남자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했을 때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장애인이라는 말, 혹은 ‘장애 같다’는 표현이 10대 남성 문화 안에선 아무렇지 않게, 농담처럼 사용되는 현실은 알고 있었지만… 수업 도중에도 그 말들이 반복되는 걸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어떻게 이 상황에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저희가 너무 정색하면서 지적하면 이후 수업에서 오히려 더 마음을 닫아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게임이나 운동을 중심으로 한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어서 학생들이 꽤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조금다른 운동회’는 단순히 교육적인 목적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나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됐어요. 단순히 “이런 장애를 체험해 봤어” 같은 표면적인 이해에 머물지 않고 같이 놀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도, 즉 감각의 위계를 허무는 아주 작고 미세한 틈을 여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접근성 작업이 워낙 많다 보니 운동회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충분히 풀어내진 못했지만, 그 방향성을 놓지 않고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몸으로 경험하는 감각’, ‘직관을 통한 만남’, ‘비장애 중심 사회의 전복’, 그 안에서 실제로 위계에 금이 가는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18. 모든 이들을 환대하기 위한 현장 운영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당연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떤 생각 혹은 어떤 시도가 가장 먼저 필요할까요?
저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는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뒷동네 보드게임방 모임이 정말 편안하고 따뜻한 모임이거든요. 근데 막상 초대하면 두려워하는 마음들이 느껴지더라고요. 두려운 마음이라고 하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마음인 거죠. 비장애인 청년은 장애 청년을 만났을 때 “내가 무례한 말을 하면 어쩌지?”, “어떻게 말해야 하지?”, “잘못하지 않고 만나야 해.”라는 압박과 긴장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그게 결국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아예 참여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실수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모난 모습이나 서툰 말들이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중요한 건 그런 실수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마음들을 너무 움켜쥐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조금 기다려주고 보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거예요. 그런 감각은 반복되는 만남 안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거고 저 자신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마음이에요. 결국 환대라는 건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잘 만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에서 ‘환대’는 보통 비공식적인 틈으로만 존재해 왔는데, 그것을 하나의 운영 방식으로 구조화하신 점이 인상 깊었어요.) 저희는 접근성을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공간은 없잖아요. 경사로나 엘리베이터처럼 물리적인 조건이 항상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가 직접 요청을 해야만 움직이는 구조니까. 그런데 그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보면 많은 분들이 눈치를 보거나 미안해하면서 이야기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요. 자연스럽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기본 권리’가 어떤 구조 안에서는 조심스러운 요청이 되어버리는 상황, 그건 결국 공간의 문제라기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공간 안에 편하게 질문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환대의 감각은 가능해지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가능하면 현장에 접근성 스태프가 상주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꼭 접근성 스태프가 아니더라도 현장 스태프 중 누군가는 접근성에 대한 정보와 감각을 알고 있다면 훨씬 편안한 현장이 될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해야 누구나 편하게 질문하고 요청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19. 앞으로 ‘조금다른주식회사’가 ‘불통’을 ‘소통’으로 전복하기 위해 사회에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고, 어떤 기획으로 완성해 나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희 팀원은 뮤직페스티벌 가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DMZ페스티벌에 갈 때도 동료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올 수 있을까? 가게 된다면 어떤 준비들을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요. 같이 잘 놀고,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으니까요.
사실 저희는 의뢰가 들어오는 일에 맞춰서 일을 해 나가다 보니까 스스로 재밌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다양한 동료들과 같이 나누면 재밌겠다 싶어서 <같이 별 보러 갈래>라는 이름의 기획을 하고 있어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즐겁고 편한 순간과 그 순간들의 배리어를 나누면서 함께 별을 보러 가는 활동이나 음악 페스티벌 활동들을 기획하고 있거든요. 같이 재밌게 놀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들을 해 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활동들을 조금씩 넓혀가고 싶어요.
20.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라는 문장처럼, 조건과 감각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올해 4월 말쯤, ACC에서 열린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안녕히 엉키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요. 김원영·손나예·여혜진·이지양·하은빈 작가님들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실패 경험을 나누고 서로 몸을 맞대며 엉키는 움직임 워크숍이자 전시였어요. 3일간 진행됐고 저는 마지막 날은 일이 있어서 반쯤만 참여하고 주로 지켜봤는데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몸을 맞대고 굴러가며 엉켜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저에게도 ‘경계를 넘는 일’은 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데 그날 저 자신도 제가 가진 경계를 새삼스럽게 느꼈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과 몸을 엉킨다는 것,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조심스럽고 망설여지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안에서는 마치 이미 오래 함께해 온 공동체처럼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농인, 비장애인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앉고, 눕고, 구르고, 각자가 가진 출력물들을 읽고 싶은 대로 읽기도 하고. 프로그램 이름처럼 안녕히 엉키는 그 순간이 인상적이어서 이후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했었고요. 고유한 자기 자신이 고유한 타인과 엉키는 것들이 더 확장되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조금다른의 성격과 같이 소재용은 따뜻하고 세심하고 사람들이 즐겁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게 해 나가는 사람이다. 감각을 공유하는 법,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 그리고 불통을 소통으로 전복시키는 법을 온몸으로 마구 경험하며 한없이 성장하는 사람 같다. 그 모습은 다정하게도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있고 그 사람들은 서로 조금 닮았다.
환대는 거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할 수 있다. 잘 만나고픈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된다. 소재용은 그 마음을 인터뷰 내내 보여줬다. 그리고 본인도 계속 그 선을 찾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해줬다. 우리는 이미 환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 조금 닮았지만 그래서 조금 다르다. 조금 다른 사람들은 항상 당신 옆에 있다. 답변 하나하나에 적힌 소재용의 마음결이 계속 그렇게 들렸다.
Interviewee 소재용
Interview 엄나영
Research 배정아
Edit 김윤이, 엄나영
Photography 김윤이, 배정아
Design 김윤이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