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예술 단체 누비스 아티스트 백서현 인터뷰
수어가 온전한 언어로 존재하듯, 춤 역시 감정과 이야기를 전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된다. 백서현은 춤과 수어, 두 세계를 겹쳐내어 무대 위에서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사람이다. 수어를 단순히 안무처럼 소비하지 않고, 언어로서의 무게를 지켜내려는 그의 태도는 수어 댄스와 농예술이 그 자체로 완전하고 독자적인 장르임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농예술은 수어와 농문화를 기반으로, 농인의 고유한 경험과 시선을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몸 자체가 언어가 되는 순간을 통해, 소리 중심의 무대가 보여주지 못하는 감각의 층위를 열어 보인다. 백서현은 바로 그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춤을 언어로 확장해 왔다. 우리는 춤도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따라, 신촌에서 누비스 아티스트 백서현을 만났다.
1. 서현 님의 자기소개와 함께 소속되어 계신 누비스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누비스에서 수어 댄스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서현입니다. 누비스는 연기, 춤, 에세이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아우르며, 농예술을 중심으로 세워진 회사입니다.
2. 핸드스피크 시절부터 지금의 누비스까지 함께 활동해 오셨는데요. 서현 님께서는 어떻게 누비스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또 누비스와 함께한다는 것은 서현 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핸드스피크의 오디션과 면접을 봤고요. 그게 잘 진행이 되어서 감사하게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누비스에서 농예술에 더 집중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누비스는 단순히 활동 무대가 아니라, 농예술을 중심으로 제 정체성과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3. 퍼포머로서 ‘전달한다’라는 건 서현 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전달한다’는 건 늘 새로운 도전이에요. 이전에 활동했던 핸드스피크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 있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작품을 펼치는 느낌이 강했다면, 누비스에서는 처음부터 시스템을 만들고 작품을 어떻게 완성할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많은 것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티스트로서의 무대까지 전반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4. 안무를 창작하실 때, 춤과 수어를 어떻게 엮어낼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두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표현들이 어떤 감각으로 다가오는지, 서현 님만의 창작 스타일과 연결해서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예요. 예를 들어 노래 한 곡을 정했다고 해서 모든 가사를 수어로 번역하려는 게 아니라, 곡의 내용을 분석한 뒤 어떤 구간은 수어로, 어떤 부분은 춤으로, 혹은 수어와 안무를 함께 사용해서 표현해요. 이렇게 선택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성돼요.
저만의 창작 방식이라면, 우선 기존의 춤을 중심에 두고 그 위에 수어를 얹어 변화를 주고 있어요. 노래 중심으로 수어 댄스를 하다 보면 가사의 모든 것을 분석해야 하기도 하고, 어떤 수어로 전달할지, 그리고 이 수어 댄스가 농인의 관점에서 이해가 갈지 함께 고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수어 댄스를 만드는 게 절대 쉽지 않지만, 농인 관객이 모든 내용을 100%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재미와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5. 작업을 하시면서 ‘이건 농예술에서만 가능한 장면이다’라고 확신했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서현 님이 느끼시기에 농예술만의 특별한 감각은 무엇인가요?
청인 아티스트는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하는 게 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춤이 아니더라도, 목소리만으로도 슬픔이나 기쁨 같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잖아요. 농인 아티스트는 몸 자체가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매개가 돼요. 특별한 장면을 꼽기는 어렵지만, 비욘세의 <Love on Top>을 수어 댄스로 표현했던 영상이 있어요. 청인의 무대에서는 목소리가 중심이 되면서 동작이 한정되지만, 저는 오히려 몸을 더 즐겁게 움직이고 시각적으로 감정을 확장해 보여줄 수 있는 데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거죠.
6. 핸드스피크 유튜브에서 수어가 안무의 일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언어로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았어요. 이 지점을 지켜내기 위해 창작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수어를 안무처럼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가장 많이 써요. 청인들이 방송에서 수어를 퍼포먼스의 일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정작 무엇을 전달하려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어와 안무를 함께 사용할 때, 수어라는 언어가 온전히 보이는지, 손의 동작이 잘 이해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만약 안무가 수어를 가리거나 방해한다면 과감히 동작을 줄이고 수어 중심으로 다시 맞춰요. 언어로서의 수어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게 제가 지켜내고 싶은 가장 큰 원칙이에요.
7. 춤추는 서현 님의 영상을 보면 유쾌하고 밝은 에너지가 강하게 전해집니다. 무대에서 관객과 감정을 주고받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각은 무엇인가요? 특히 올해 2025 데프네이션 무대에 서셨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관객과 감정을 직접 주고받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다른 아티스트들처럼 강한 캐릭터로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데 이번 2025 데프네이션 무대에서는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구나’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어요. 특히 그날은 풀장에서 무대가 진행됐는데, 관객이 정말 가까이 있었어요. 지금 저희가 인터뷰를 나누는 정도의 거리만큼 가까웠어요. 표정이 또렷하게 보이는 정도라서 떨리기도 했는데, 집중해서 즐겁게 추다 보니 중간중간 환호해 주시고, 온전히 집중해 주시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렇게 가까이서 다양한 반응을 주고받으면서 무대를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8. 누비스 대표님의 인터뷰를 보았어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도 세상은 여전히 말과 글 중심으로 흘러가고, 농인들의 삶 자체가 확 개선되진 않았다고요. 서현 님께서는 이런 구조 속에서 ‘나는 배제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제가 연극, 뮤지컬 공연을 좋아해요. 특히 노래 듣는 걸 좋아해서 뮤지컬 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먼저 문자 통역이 제공되는지 확인해야 해요. 만약 없다면 통역사를 동반해도 되는지 물어봐야 하고요. 그런데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여전히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하는 것 같아요.
9. 영상을 보면서 서현 님의 긍정적이고 강한 에너지를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서현 님께도 좌절의 순간,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불통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순간들을 잘 넘기며 지금의 서현 님을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꼭 나쁜 사람을 만나서 좋지 않은 일을 겪거나,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상황이 많이 없었어요. 어떠한 일을 겪더라도 가볍게 넘기는 성향인 것 같아요. 결국 상대가 당장 바뀌는 게 아니니까 제가 불편한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저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어디서든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털어내려 해요.
가족이나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는 감정을 오래 끌지 않으려고 해요. 불편한 게 생기면 바로 대화로 풀어내는 편이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혼자만의 방식으로 풀어요. 잠시 휴대폰을 본다거나 자고 일어나면 금세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가볍게 흘려보내는 게 제 방식이에요.
10. 아티스트로서의 불통은 또 다른 차원일 것 같습니다. 뜻이 잘 맞는 동료들과 협업하면서도 때로는 벽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창작 현장에서 마주했던 불통의 순간이 있다면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불통의 순간 중 그 경험을 계기로 창작에 도움이 됐던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냥 싸워요. 갈등이 생겼을 때 참고 대화도 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안 나오거든요. 왜냐하면 각자만의 스타일과 역량 모두 다르다 보니, 서로 알게 모르게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참고만 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면 풀릴 때도 있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감정을 억누른 채 대화를 피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늘 먼저 대화하자고 나서는 편은 아니에요. 상대의 표정을 보면서 지금 괜찮은 상태인지, 대화를 해도 될 상황인지 살펴요. 만약 아직 풀리지 않았다면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잠시 두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거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음에는 최대한 조율하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런 불통의 순간 덕에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걸 발판으로 새로운 작품의 색깔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11. 한국에서 농예술이 아직은 생소할 수 있는데요. 관객이 서현 님의 무대를 통해 ‘농문화는 이런 것이구나’ 오해하거나 단순화할까 걱정되신 적은 없나요?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넘어가고 싶으세요?
관객의 오해보다는 저는 수어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가 늘 가장 큰 걱정이에요. 청인 중에도 수어를 퍼포먼스처럼 소비하면서 스스로 수어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농인으로서는 이런 방식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그렇다 보니 저 역시 제 표현이 농인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많이 고민해요. 저도 수어 먼저 사용했던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농인이 볼 때 제 수어가 잘 전달되는지, 진심이 닿는지를 가장 많이 신경 써요. 춤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지만, 수어는 언어이기에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언어로서의 수어라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더 깊이 고민하고 다듬어 가고 싶어요.
12. 영상을 보면 주류의 예술을 따라 한다기보다는 그 자체로 완전한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몸으로, 표정으로, 그걸 아우르는 수어로 표현하는 것은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문장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완전한 예술을 행위하시는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서현 님은 작업을 하시면서 스스로 발견하는 자유나 한계가 있으셨나요?
자유와 한계는 늘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맞는 예시일지는 모르겠어요. 노래 가사의 특정 구절을 표현할 때, 그 가사 그대로 몸으로 보여줄지, 리듬이나 높낮이 등에 맞춰 움직일지를 두고 고민하는데, 솔직히 더 어려운 건 가사에 맞춰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럴 땐 다양한 영상을 찾아보면서 표현의 레퍼런스를 쌓아가려고 해요. 몸짓(바디랭귀지)도 언어이니까요. 슬프다는 감정은 엎드리는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고 흡수하려고 해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수많은 시도를 거쳐서 진행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제한적으로 느껴지던 부분도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갈 기회가 되더라고요.
13. 누비스의 협업 과정에서 다른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며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경험이나 배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청인 아티스트들과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가 수어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 모두 태연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신기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셨어요. 특히 한 번은 모두 청인 아티스트였고 저 혼자 농인으로 참여한 촬영이 있었는데, 통역사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많은 분이 제 상황을 배려해서 어떤 촬영인지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 주시고, 제가 이해가 느릴 때는 몇 번이고 반복해 주셨어요. 덕분에 감사하게도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또 어떤 분들은 먼저 수어에 관심을 갖고, 직접 표현을 배워 조금씩 사용해 주시기도 했어요. 그렇게 서로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루어졌고, 그 경험이 특히 깊이 남은 것 같아요.
14. 농예술의 힘은 몰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어를 모르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직접적인 소통이 없더라도 그 순간을 넘어 찾아오는 소통의 경험이 서현 님께도 있으셨나요?
누비스 설립되기 전에 핸드스피크 아카데미에서 현대무용을 배운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즉흥적인 움직임을 특히 강조하셨어요. 처음에는 잘 따라가지 못해 어려웠는데, 점점 적응하면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고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배운 점이 정말 많았어요. 수어로, 언어로, 말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표현하고 주고받을 뿐인데, 표현이 되고 전달이 되니까 너무 좋았어요. 예를 들어 주제가 동그라미라면 손으로 원을 그릴 수도 있고,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려 동그라미를 만들 수도 있고, 발이나 머리로 원을 만들기도 했어요. 같은 주제를 두고도 완전히 다른 표현이 나오는 걸 보면서, 언어가 없어도 충분히 감각과 생각이 공존하고, 공유될 수 있다는 걸 강하게 느꼈어요.
15.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데뷔스플랜> 프로그램에 농인 아티스트로 참여하셔서 수어와 안무를 직접 가르치셨습니다. 무대를 하는 것과 남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경험일 텐데요.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무대에 서는 데만 집중했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그 프로젝트에서 만난 분들이 모두 중고등학생의 아이돌 지망생들이고, 청인이라 ‘내가 과연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잘 못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청인이라서 잘 못 따라올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경험이 되었어요. 동시에 지금까지의 경험 덕에 그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행복하게 진행했던 것 같아요. 오래전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꼭 전하고 싶었던 지점은 수어를 춤의 수단으로만 소비하지 말아 달라는 점이었어요. 수어 댄스를 가르칠 때도 동작 속에 수어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그 부분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가능하다면 수어 댄스는 농인 아티스트가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수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함부로 차용되기보다는 존중받으며 사용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16. 앞으로 농예술, 특히 수어 댄스가 주류 무대에 더 많이 오르기 위해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 작품에 대해 반신반의할 때, 제 안에서도 시원하게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누군가의 의견을 통해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잖아요. 연습은 개인의 노력으로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제 실력이나 표현이 어느 정도인지, 더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가늠하기는 어렵거든요. 누군가 제 작업을 보고 피드백을 주고, 제가 그것을 반영해 개선하는 과정이 있어야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꼭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수어와 춤을 깊이 볼 줄 아는 분들이라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별도의 트레이닝 체계가 없다 보니, 결국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런 환경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7. 누비스는 작품을 통해 감각, 소통,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서현 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실현하고 싶은 작업이나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공유해 주세요.
아직 수어 댄스에 대해 100% 정답을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지금 하고 있는 수어 댄스와 수어 노래 모두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수어 노래라고 하면 가사들을 다 표현하는 건데, 수어 댄스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탐구해 보고 싶어요. 작품을 만들 때마다 그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큰 목표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 단계씩 밟으면서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그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거라 믿어요.
18.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라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서현 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저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가장 선명해져요. 단순히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공감이 될 때요. 또 반대로 제가 힘들 때 누군가가 저를 지지해 주고 힘이 되어줄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는 순간에도, 일상의 작은 관계 속에서도 결국 그런 경험들이 쌓여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가는 그 시간이야말로 제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가장 깊이 실감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무대 아래의 백서현도 무대 위 백서현만큼이나 밝고 유쾌했다. 그는 관객과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며 주고받은 환호와 시선 속에서, 지난 시간의 고민과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스스로 성장해 온 과정이자 앞으로를 향한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백서현은 여전히 도전 중이다. 수어와 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농예술의 무대를 확장하기 위한 다음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좌절 대신 웃음을 택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불통도 기꺼이 감수하는 그의 태도는 분명 농예술이 나아갈 길과 닮아 있다.
그동안의 인터뷰에서 ‘듣다’는 청각적인 의미가 아니라 존재와 표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행위로 확장되어 쓰였다. 모두가 같은 달 아래서 듣고 있고, 닿고 있음을 증명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농예술이 더 많은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로 자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서 다시 백서현을 마주하길 바라며.
Interviewee 백서현
Interview 엄나영
Research 배정아
Edit 엄나영
Photography 김윤이, 배정아
Design 김윤이
KSL Interpretation 박진화, 남진영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