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
어느덧 임신 후반. 예정일이 10일쯤 남은 어느 날.
만삭의 임산부가 차마 2시간 30분의 KTX를 감당할 수 없어 부모님이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다음에 만날 때는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나겠다면서 설렘과 희망을 가득 담은 화기애애한 가족모임을 마치고 부모님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산가방은 미리 싸두었고 아기 빨래도 깨끗하게 해서 지퍼백에 포장까지 해둔 평화로운 월요일이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11월부터 초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진또배기 호박고구마'를 사러 근처 시장도 갔다.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편의점에서 달달한 바나나우유로 소확행도 이루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배가 싸르르- 하니 곧 나올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생리통처럼 배꼽 근처가 알싸한 느낌이 오후 내내 반복됐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 곧 나올 것 같아."
"그래?"
예정일이 일주일 정도 남은 상황이라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싶었다. 초산은 대부분 아기가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기에 나도 큰 걱정 없이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40분.
자는 와중에 뭔가 주룩- 하고 흐르는 느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헉- 이게 뭐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양수가 터진 건가? 선명한 이슬과 양수가 보였다. 얼른 입는 오버나이트를 꺼내 입고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병원에 가도 기다려야 해.
-집에서 편하게 진통하다가 2-3cm 정도 열린 다음에 병원에 가는 게 제일 베스트라고 했는데?
-지금 3cm까지는 안 열렸겠지?
-양수가 터졌으면 바로 병원에 오라고 했는데?
-양수 터졌으면 샤워는 하면 안 된댔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인 건 양수가 와르르 쏟아진 느낌은 아니라서 집안을 살살 걸어 다니며 호흡을 하면서 진통을 참아냈다. 양수가 터지면서 함께 시작된 진통은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웠다. 거실에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라마즈호흡을 아무리 해도 고통스러운 건 고통스러운 것.
1시간 30분이 지났을까. 순산해요 어플로 진통 주기를 체크하는데 3-4분 간격으로 1분 동안 진통이 계속됐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 저 39주 1일인데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지금 3-4분 주기로 진통이 오는데요."
"양수가 터지신 거예요? 얼마나 되셨어요?
"1시간 30분 정도요."
"출산가방 챙겨서 병원 5층으로 오세요."
"아아, 네."
"자기야, 일어나. 가방챙겨."
"어? 어... 어!"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고 나는 그와중에 출산 임박 배 사진을 찍었더랬지. 출산용품이 가득 담긴 23인치 캐리어(a.k.a. 출산가방)를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단 5분.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몇 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몇 초가 지옥처럼 느껴지는 진통이었다. 훕- 훕- 훕- 후으으읍- 호흡은 더이상 소용이 없었다.
11월 초, 어느 날,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