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웃긴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심하고 말을 늘 아끼는, 외부에서 보면 ‘교사 맞어?’라는 의문이 드는 조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매년 아이들과 래포가 어느정도 형성되고 나면 하는 일종의 이벤트가 있습니다.
바로 AI선생님 흉내내기 입니다.
예전에도 11월 즈음에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서는 11월이 가장 사건사고가 많다고 합니다. 교사의 체력도 떨어지고 아이들도 교사가 편해져서 조금씩 선을 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고 해요.
저희 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최근 들어 개그맨이 늘어났어요.
수업 시간에도 자꾸 저를 웃기려고 합니다.
농담이나 애교를 던지며, 선생님이 피식이라도 웃으면 세상 행복해해요.
그러다 하루는 너무 웃겨서 저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 웃은 적도 있었네요.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보며 더 즐거워했어요. 문제는 그 이후 아이들의 애교가 더 늘어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올해도 변신했습니다.
AI선생님.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 시작입니다.
“안녕하세요? AI 선생님입니다.
모드를 선택하세요.
1.무뚝뚝한 AI
2.친절한 AI”
AI가 말하듯이 일정한 톤과 어조로 말하면 아이들이 ‘우와~’하면서 재미있어해요.
처음에는 신이 났어요. 선생님이 AI 흉내라니. 그러면서도 친절한게 좋은지 ‘친절한 AI’를 선택합니다.
“안녕하세요? 친절하지만 마음은 차가운 AI 선생님입니다. 지금부터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분명 친절한 말투이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감정이 없는 듯이 말을 합니다. 진짜 AI처럼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갑작스런 이벤트에 신이 나서 마구 말을 던져요.
“선생님, 진짜 AI 같아요.”
“우와 선생님 연기 잘한다~”
그러면 저는 친절하게 말을 합니다.
“ㅇㅇㅇ학생, ㅇㅇㅇ학생. 수업 시간에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였으므로 이름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집니다.
(소곤소곤)
“ㅇㅇㅇ학생, 왜 뒤를 보고 얘기하고 있죠?”
“아, 떨어진 연필이 네 거냐고 물어봤어요.”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하였으므로 이름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네??”
교실에는 정적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교사는 친절한 말투로 진행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끼어들거나 떠드는 사람 없이 조용한 수업 장면이 연출됩니다. 아이들은 오직 교사가 발표를 시킬 때만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어 말합니다.
꿈같은 교실풍경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곧 아이들은 힘든 표정으로 여기저기서 손을 듭니다.
“ㅇㅇㅇ학생, 무슨 일이죠?”
“AI선생님 말고 우리 선생님으로 돌아와 주세요.”
“맞아요, 맞아요.”
아이들이 애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얘들아 선생님 왔어~”
“선생님~~~”
초등학생들이라 잠시의 연기에도 몰입하는 모습입니다. 참 귀여워요.
이후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으면 말합니다.
“AI선생님 불러올까?”
“아니오!!!!!”
“절대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들.
저의 두 번째 자아인 AI선생님을 아이들은 참으로 싫어합니다.
친절한 말투 뒤에 숨어있는 묘한 차가움과 융통성 없는 칼 같은 모습이, 아이들의 마음도 수업 분위기도 얼어붙게 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AI 업그레이드 버전도 보여줍니다. 모드가 많아져요.
애교있는 AI,
우리반 친구들을 따라하는 AI,
임금님 AI 등.
임금님 버전에서는 눈치 빠른 아이들이 대답을 신하처럼 해줘요.
“문제 2번을 풀어보거라.”
“예, 전하.”
“정답은 무엇인가?”
“평행사면형이옵니다, 전하.”
“누구인가?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어?”
“그거 궁예 아닌가요?”
“궁예도 임금님이니라.”
새로운 AI버전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처음엔 웃고 즐거워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선생님 돌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아이들이 AI선생님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교사와 부모는 대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먼 훗날 교실에는 AI선생님이, 집에는 AI돌보미가 있을까봐 걱정이에요.
그런 일은 없기를,
온기를 주는 역할은 사람의 역할로 남아 있기를.
<덧붙이는 경험담>
어느 날 아이들이 ‘무서운 AI선생님’을 선택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무서운 AI선생님입니다. 지금부터 떠드는 학생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아이들이 한껏 들뜨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뀨’하는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는 아이도 있어요.
저는 빵 터져버렸습니다.
“어! 선생님 웃었다!”
저는 당황해서 그대로 멈춰섰습니다. 한 몇초간 미동도 않고 서있으니 아이들이 외쳤어요.
“고장났다!”
“진짜 로봇이 멈춘 것 같아!”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얘들아, 무서운 AI는 지금 안된대.”
포기한 선생님의 모습이 웃긴지 아이들도 깔깔깔 웃어요.
무서운 선생님 흉내는 너무 어려웠어요.
제가 연기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무서운 AI선생님 버전은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