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에너지 획득 알고리즘이 변화하는 순간, 시대는 종료됩니다.
1431년, 잔다르크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진 이후에도 프랑스의 알고리즘은 생기를 잃지 않습니다. 그녀가 남긴 승리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았고, 프랑스의 승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프랑스는 부르고뉴를 시작으로 대륙에 잔존해 있던 잉글랜드의 영토를 하나씩 수복했고, 머지않아 잉글랜드는 대륙과 이별하게 됩니다. 1453년, 싸움의 이유와 이점을 모두 상실한 잉글랜드는 전의를 잃었고, 백년전쟁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 끝을 맞이합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동로마 역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며 멸망하면서, 중세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중세가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와 정보처리장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점에는 분명한 전환이 발생합니다. 바로 국가의 세입과 세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년전쟁을 기점으로, 봉건 제후에게 의존하던 세입 방식과 왕의 사적 소비가 중심이던 중세 유럽의 전형적인 재정 구조는 광역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변화가 널리 퍼진 이유는 단순합니다. 경량급에 가까운 잉글랜드가, 중량급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를 상대로 예상 외로 너무 잘 싸웠고, 많은 국가가 이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의 힘은 의회 승인에 기반한 국세 제도에서 나왔습니다. 이 구조를 직접 목격한 유럽 국가들의 거울회로는 자극을 받았고, 학습이 시작됩니다. 잉글랜드를 직접 겪은 프랑스는 백년전쟁 말기부터 조세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 알고리즘을 제도화합니다.
머지않아 새로운 국가 알고리즘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농노와 지역주민으로부터 세금을 공급받기 힘들어진 봉건 제후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이 알고리즘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국가의 구조와 정보풀이 변했고, 경쟁에 유리한 정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확산되고 잔존한 것이죠. 그렇게 유럽은 중세의 구조에서 근대의 구조로 진화했습니다.
변화한 조세 알고리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역은 군사력입니다. 사실상 작은 규모의 국가였던 잉글랜드가 지속적으로 병력을 분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제후에게 의존하던 자금과 군사력이 상시화된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만 가능한 구조입니다. 제후에게 요청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제후 역시 국가와는 별개의 정보처리장치이며,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중심의 세금구조라는 점에서 로마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근대의 구조는 고대 로마와도 분명히 구별됩니다. 로마는 전쟁과 정복을 통해 외부 에너지를 획득하는 국가였습니다. 정복 전쟁을 멈추는 순간 외부 에너지 유입은 줄어들었고, 반대로 과도한 확장은 관리 불가능성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습니다. 로마를 포함한 수많은 고대 국가가 이 딜레마 속에서 몰락합니다. 반면 잉글랜드는 내부에서 발생한 잉여를 외부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외부 에너지를 획득합니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한 핵심 조건은 교역의 활성화였습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정보 밀도가 균등해지며 수요가 발생했고, 잉글랜드 상품에 대한 시장이 형성됩니다. 특히 양모가 잉글랜드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요. 양모를 생산과 운송에 소모되는 비용보다 비싸게 팔면서 잉여 자금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외부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이 확장 전쟁에서 교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교역은 전쟁보다 지속 가능하며, 리스크가 적습니다. 사실상 교역은 또 다른 형태의 약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잉여 자금이 증가한 것은, 교역 확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의회를 통한 국왕의 지출 감시와 봉건 제후의 몰락도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중세 국가의 재정은 왕과 제후의 사적 소비에 가까운 구조였습니다. 국가와 지역이 걷어들인 세금은 국가의 이익과 무관하게, 국왕과 제후의 도파민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모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새고 있던 구조였던 것이죠. 새로운 국가 알고리즘은 왕의 무분별한 지출을 제어하고, 제후를 배제함으로써 이러한 누수를 차단합니다. 그 결과 국고는 훨씬 튼실해질 수 있었습니다.
튼실해진 재정은 군사력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국가는 비로소 국가만을 위한 상시 병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됩니다. 조세 방식의 개혁과 정치 구조의 변화 그리고 군사력의 확대와 유지. 이 세 가지가 결합된 것이 근대 국가 알고리즘의 핵심이라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이 구조의 효율성은 백년전쟁을 통해 증명되었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중세의 알고리즘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대략 천 년 동안 중세의 CPU역할을 담당했던 기독교도, 에너지 확보 수단이었던 봉건 제도도, 비로소 막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정보처리장치가 외부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이 구조의 변화가 압도적인 효율성을 증명하며 확산된 것이죠. 이것이 시대변화를 의미한다고 판단합니다. 사실상 생명 역사의 모든 변화와 문명의 모든 변화는 이런 변화를 반복한다고 판단합니다. 생명과 문명, 둘 다 에너지를 획득하고 소모하는 정보처리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중세가 끝나고, 드디어 개인 위에 국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