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

그녀의 등장과 죽음이 보여준 신앙과 도덕의 작동 방식

by 미친생각

백년전쟁과 흑사병의 반복 속에서 프랑스는 붕괴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립니다.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는 패배가 이어졌고, 전쟁의 장기화는 국고와 사기를 소진시켰습니다. 여기에 흑사병이 반복적으로 확산되면서 세수와 병력, 행정에 걸쳐 국가 알고리즘 역시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에너지가 고갈되자 군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조차 어려워졌고, 불만을 품은 용병들은 약탈로 생계를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흉흉한 세상 속에서 생존이 어려워진 농민들은 증세에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시 프랑스의 국가 알고리즘은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고리즘의 핵심에는 신의 존재가 있었고, 교회는 신과 세속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국왕은 신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속세의 대표였으며, 귀족들은 이를 보조하는 CPU 역할이었죠. 민중은 교회와 국가가 제시하는 프롬프트를 수행하는 구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알고리즘을 통해 민중은 세금을 내고 전쟁에 동원되는 고통을 감내할 이유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과 도덕이 작동하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이름을 외치는 와중에도 전장의 패배가 반복되고, 교회와 귀족의 탐욕과 무능이 지속적으로 관찰되면서 민중의 알고리즘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국왕이었던 샤를 6세는 극심한 정신 질환으로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고, 이 틈을 타 잉글랜드와 프랑스 내부 세력 간의 정치적 후계자 다툼이 격화됩니다. 결국 국가의 CPU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민중은 더 이상 내세와 신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이유 또한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의 또 다른 이름은 신앙과 도덕이었습니다. 옳다고 믿어왔던 삶의 방식이 무너지면서, 신앙과 도덕 역시 함께 붕괴된 것입니다. 이로써 국가와 민중이 공유하던 알고리즘은 와해되고, 백년전쟁 말기의 프랑스는 극심한 혼란 속에 놓이게 된것이죠. 이탈을 통제할 국가의 에너지조차 소진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의 계시를 주장하는 한 10대 소녀가 기적처럼 프랑스의 구세주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잔다르크입니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동부의 둠레미 지역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25년, 당시 열세 살에 불과했던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그 부름에 순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잔다르크는 지방의 영주를 찾아가 자신의 사명을 주장했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과 신앙적 검증을 거친 끝에, 기어코 출전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후 샤를 왕세자는 잔다르크에게 유능한 기사들을 붙여주고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그녀의 첫 전쟁터는 오를레앙이었습니다. 당시 오를레앙은 잉글랜드군에게 반쯤 포위된 상태였으며, 샤를 왕세자에게는 정치적으로도 마지막 숨통과 다름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오를레앙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샤를 왕세자는 왕위 계승의 정당성 자체가 무너질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잔다르크의 참전 이후 전황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오를레앙의 포위가 풀리고, 이후에도 그녀가 참여한 전투에서는 연이어 승리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샤를 왕세자는 마침내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왕위 문제가 해결되자, 잔다르크의 상징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녀의 고향인 둠레미는 잔다르크의 요청에 따라 조세 면제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잔다르크는 마을의 영웅이자 프랑스의 상징이 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샤를 7세를 지지하던 정치 세력은 왕위가 확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바로 잔다르크였습니다.


전장에서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잔다르크의 활약은, 점차 마녀와 이단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되과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샤를 7세와 잔다르크 사이에는 점차 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잔다르크는 전장에서 포로가 되었고, 부르고뉴 세력을 거쳐 잉글랜드 측으로 인도됩니다. 프랑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잔다르크는 포로의 신분으로 이단 재판에 회부됩니다. 1431년, 그녀는 루앙의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잔다르크의 짧고도 강렬한 생애는 신앙과 도덕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열여섯 살의 소녀가 전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신앙이 당시 사회에서 주효한 알고리즘이며 도덕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잔다르크는 이 국가 알고리즘을 호출하며 등장했고,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정치적 성과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샤를 7세의 입장에서도 그녀는 알고리즘 위에 도파민을 얹어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화형당한 이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굳게 믿었던 신앙과 도덕이었습니다. 그녀를 마녀로 몰아세운 프랑스 귀족들도 기독교인이었고, 그녀를 이단으로 재판해 화형에 처한 잉글랜드 역시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문제는 프랑스 귀족에게도, 잉글랜드에게도 잔다르크의 존재가 정치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도덕과 신앙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었고, 이들이 규정하는 것이 곧 도덕과 신앙의 알고리즘 구조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도덕과 신앙이라는 알고리즘 구조는 국가의 CPU가 정한 에너지의 노선이며, 그 구조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 구조 자체가 국가 CPU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도덕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민중은 그것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