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평화가 만든 착각, 그 대가는 혹독하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고대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두려움, 이익, 명예”라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전쟁들은 한 가지 공통된 본질을 드러낸다. 바로 더 많은 잉여자본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집단적 욕망이다.
제국주의 전쟁,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분쟁들까지, 전쟁은 도덕적 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 충돌이 불러온 비극이다. 전쟁은 결코 과거의 사건이 아니며, 언제든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냉혹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진 평화는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안이함을 낳았다. 전쟁을 뉴스 속 남의 일쯤으로 치부하며, “설마 다시 일어나겠는가”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도발을 멈춘 적이 없고, 미·중 경쟁은 동북아를 언제든 불씨로 만들 수 있다. 전쟁을 남의 일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눈을 가리고 벼랑 끝에 서는 꼴이 된다.
문제는 군 내부에도 있다. 누구도 훈련을 강하게 시키려 하지 않는다. 지휘관은 복무 기간 동안 사고 없이 임기를 마치길 원하고, 참모들은 진급만을 꿈꾼다. 내 생각과 철학은 중요치 않고, 윗사람의 지시와 사고 회피만이 지혜처럼 통용되는 조직이 되었다.
군의 본질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병사들은 동고동락의 전우가 아니라 관리와 타협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사고 없는 군대”라는 미명 아래, 전쟁 준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안전을 갈망하는 타협 속에서 대비되지 않는다. 준비 없는 평화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대비의 힘을 보여준다. 인구와 자원이 열세였지만, 국민 전체가 안보를 생존 과제로 인식했고, 치열한 훈련과 전쟁사 연구를 통해 수차례 중동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전쟁 경험 부재와 군의 타성,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스스로를 안일하게 위로한다. 이 대비의 격차가 결국 전쟁의 순간, 생존과 몰락을 가른다.
군대가 다시 본질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지휘관은 사고 없는 시간을 보내는 데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대비하는 훈련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참모는 진급이 아니라 국가와 전우를 위한 전략적 고민에 몰두해야 한다. 병사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아야 할 전우이며, 국민은 전쟁을 군대만의 과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이자, 우리의 미래이며, 우리의 책임이다. 오늘 우리가 외면하는 그 한 발자국이, 내일의 비극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역사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준비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