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라 마디간 (1967년작)

모짜르트가 장식한 엔딩

by 비마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다. 한국 개봉은 1972년이었다. 어쩌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게됐다. 아마도 영화 포스터에 인쇄된 여주인공이 너무 예뻐서 극장에 간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괜히 들어왔다고 후회하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보는 내내 ‘내가 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너무나 지루했다. 너무나 느리게 전개되는 스토리였다. 장면 전환도 느렸다. 뭐 이렇게 지루한 영화를 돈 들여서 만들었나. 이런 영화를 또 왜 극장에서 보여주나. 입장료가 아까웠다.


이 영화에서는 금발의 여주인공이 숲속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장면, 그리고 군인인 남자와 둘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두사람이 뭔가로부터 도망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불륜이라는 단어를 알게된 것은 그보다 좀 더 성장한 뒤였다. 좌우간 음악은 좋았다. 산뜻하고 리드리컬한 선율이 밝고 깨끗한 스크린 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화면 움직임이 느리고 클래식 음악만 흐르는 이 영화는 정말 피끓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 보기에는 재미없는 영화였다. 그저 앉아서 멍청히 딴 생각하면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때로는 하품도 했을 것이다. 여자가 금발이라는 것만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북유럽 여행을 하면서 안 일이지만 그쪽 사람들은 대부분 눈부신 금발이었다.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그냥 중간에 나갈까 생각하던 때, 드디어 권총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조금 집중이 되었다. 뜬금없이 왜 권총이 나타나지? 어느 순간 남녀가 숲속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포도주와 빵, 계란을 놓고 피크닉을 하다가 둘이 껴안는다. 그리고 남자는 피크닉 상자에서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권총을 꺼내서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여자의 관자놀이를 겨눈다. 그러나, 몇초간 망설이다가 이내 “난 못하겠어”라고 말하고, 여자는 “해야돼”라고 말한다.


사실 그때 나는 왜 남자가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여자는 일어나서 허리높이까지 올라오는 걀대숲 사이로 나비를 쫓아 다닌다. 평화롭게. 그녀는 마침내 나비 한마리를 손에 넣고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총을 겨눈다. 여자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두손을 허공에 펼쳐 나비를 다시 날려보내는 순간, “탕!” 스크린을 찢을 듯한 총성이 울린다.


그 총소리는 너무 커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중에 군대에 가서 경험한 M-16소총의 총성이 그와 비슷했다. 화면은 총소리와 함께 멈춘다. 여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손 안의 나비를 날려보내는 중이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다. 그렇게 화면이 멈춘 시간이 오래 계속됐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의례히 그렇듯이 어두운 영화관에 다시 불이 허옇게 밝혀졌다. 영화가 그렇게 끝나는가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탕!" 또 한번의 엄청나게 큰 총성이 스크린을 찢고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힌다. 나는 뭔가 무거운 망치같은 것으로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경험했다. 정신적인 충격이 아닌 물리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마지막 총성은 무엇이었나.


내가 그 나이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겠는가. 왜 두 남녀가 숲속을 방황하고 쫓겨다니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그런 세계가 있는지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 총성과 함께 내 가슴에 박혀서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재미없는 영화가 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이 영화를 떠올릴때 가끔 눈물을 흘리고 싶어진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880년대 스웨덴의 육군장교 식스텐 백작과 덴마크 서커스단의 스타인 엘비라 마디간의 사랑이었다. 남자 35세, 여자 22세. 남자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상태였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스타 연예인이었던 여자는 서커스단과 부모를 떠나 남자와 함께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돈도 떨어지고 아사 직전에 급기야는 나뭇잎까지 주워 먹는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다시 돌아가면 헤어져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동반자살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영화에서 또하나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다. 누군가가 이 음악을 `즐거운 것 같지만 무지하게 슬픈‘ 음악이라고 했다. 협주곡이지만 피아노 독주곡으로도 종종 연주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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