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카드와 운전면허

시러큐스 유학기 (1996)

by 비마

미국사회에서 일년이상 살려면 사회보장카드 (Social Security Card)와 운전면허를 따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디를 가나 사회보장카드 번호와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보장 카드는 학교 등록에도 필요하고, 아파트 계약에도 필요하며, 보험을 들거나 자동차를 살 때에도 필요하다. 없어도 그런 일들이 가능하긴 하지만, 일이 약간씩 불편해진다. 사회보장번호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것이었다.


IIE의 페이지 볼드윈에게 사회보장카드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그 문제는 ELS에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LS에서는 근처의 대학에 전화를 해보더니, “J-1비자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보장카드를 받을 수 없다”면서 “사회보장사무소에 가봐야 헛수고를 할테니 아예 포기하라”고 충고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중 아무도 사회보장 카드를 신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가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회보장카드 발급이 안된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알게되면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어느정도는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7월8일. 미국에 도착한 지 이주일이 지난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사무소를 찾아갔다. 안내를 맡은 흑인 여인이 양식을 주면서 빈칸에 여러 가지 사항을 기입하라고 말했다. 그 양식은 주로 신청자가 무슨 비자를 갖고 있으며,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지를 묻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J-1비자는 학교 안에서 일하면서 공부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비자였기 때문에 그대로 기입을 했다.


내 앞에는 10여명 정도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사람도 눈에 띄었고, 동양사람, 라틴계등 여러 인종들이 줄을 서 있었다. 프랑스 여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친구가 통역을 하기위해 함께 와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사회보장카드를 신청했다.


미국의 위력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국내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이 많다는 것은 미국이 살기좋은 나라, 기회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럴까. 나에게는 아닐 것이다. 우선 미국에서 받은 인상이 좋지 않았고,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외국인에게 친절하도록 정부에서 까지 강조하는 나라가 아니었고, 영어를 잘 못하면 무시를 당하는 나라였다.


내 차례가 되자, 서류를 훑어보던 중년의 백인여자는 불과 2 분만에 무표정하게 “이주일 내로 사회보장카드를 부쳐주겠다”고 말했다. 분명히 ELS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인데, 막상 와보니 너무 쉽게 사회보장카드가 나온 것이다.


낯선 사회에 들어선 이상 무엇이든지 직접 부딪치면서 배워야 한다. 시도하지도 않고 안된다고 생각해버리면,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직접 부딪치면서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러면서 미국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또 한가지 골치아픈 절차는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지 뼈아프게 경험을 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빨리 차를 사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차를 사려면 국제운전면허가 아닌 현지의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를 가나 신분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운전면허를 따는 일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외국인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데는 무척이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사회보장 번호가 없으면 버지니아주의 자동차관련 당국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 에서는 통제번호 (Control Number)라는 것을 대신 부여해주는데, 그대신 거주지 증명이라는 난해한 절차를 또 밟아야 했다.


나는 사회보장카드가 조만간 나오게 돼 있었으나, 이주일을 더 기다리는 것 보다 미리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빨리 차를 사서 워싱턴 주변 지역의 지리를 익혀두고, 씨라큐즈에도 한 번 다녀올 작정이었다. 그래서, DMV에 전화를 해서 자세히 알아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거주지증명을 하려면, 은행구좌가 있어야 하거나, 집주인과 함께 자동차 당국에 가야하는 것이었다.


집주인 부부에게 함께 가 달라고 하는 것도 그들을 귀챦게 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는데, 연수생 일행중 누군가가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기가 사는 것으로 편지가 배달되도록 하면 그 편지가 훌륭한 거주지증명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앞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그것도 은행구좌 여는데는 효과가 있었으나, 막상 운전면허시험을 신청하는 자리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7월10일. 창구에 앉은 흑인여인은 “거주지 증명을 하려면, 당신이 사는 곳의 집주인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보니에게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주 흔쾌히 “여기에 할 일이 좀 있지만 내 동료가 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불과 30분 만에 DMV에 나타났다. 12시30분.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그 일 때문에 점심도 햄버거로 때워야 했다.


그 일은 결정적으로 내가 집주인에게 호의를 갖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혀 귀챦아 하는 기색이 없이 외국인을 도와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도와주는 데 대해서 혹시 내가 너무 친절한 것 아닌가하고 피해의식까지 갖기가 쉽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귀챦다’고 말해버린다.


보니와 해리는 내가 1년동안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양식있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신청이 접수되자, 한 10분을 기다린 뒤에 바로 필기시험을 치렀다. 시험문제집은 각 DMV마다 비치돼 있었으므로, 미리 한 권을 입수해서 2시간 정도 읽어본 터였다. 시험은 컴퓨터앞에 서서 치르는데, 정답을 화면에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확인란에 다시 손가락을 대면 정답인지 아닌지 바로 채점이 됐다.


문제의 내용은 대충, 학교앞에서는 제한속도가 얼마인가, 비오는 날 30마일로 달릴 때 앞차와의 거리는 얼마를 유지해야 하나, 버지니아주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맑은 날의 최대속도는 얼마인가등이었다. 모두 25문제였는데 23문제까지 갔을 때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나왔다.


실기시험은 전화로 버지니아주 DMV당국과 약속을 해야했다. 실기시험은 전화로만 신청을 받았다.


7월11일.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아침에 함께 연수를 하고 있는 S일보의 K기자의 차를 빌려서 면허시험장에 가려고 했지만, 그의 차가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K기자는 운전면허증 없이도 차를 사놓고 있었다. 한달내로 운전면허를 따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차를 사서 등록하려면, 즉 번호판을 취득하려면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보험을 들려면 현지의 운전면허증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튼, 차선책으로 특파원인 S선배의 차를 빌려서 시험장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차를 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면허시험에 필요한 자동차 등록증 대신에 자동차 권리증서 (Title)를 주었다. DMV에서 권리증보다는 등록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차를 온통 뒤져봤지만 등록증은 없었다. 특파원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차를 다시 특파원 사무실이 있는 내셔널 프레스 빌딩 (National Press Building) 지하에 주차시켜놓고, 렌터카 업소에서 차를 빌려서 부랴부랴 DMV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간 약속에 늦어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담당했던 직원은 동양계였다. 그래서 호의적으로 대해줄 줄 알았으나, 무척이나 깐깐하게 나왔다. 같은 동양계에 대한 배신감마저도 들었다. 약간의 융통성으로 해줄 수도 있는 일을 안된다고 했기 때문에 분통이 터졌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사리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하자고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전화로 시간약속을 했다.


그날 저녁, 해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시험장소로 가는 길을 가리켜 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녁 식사후 나를 차에 태우고 10분 정도 길을 보여주고 돌아왔다. 시험장소는 매나사스라는 곳이었는데, 자기가 식료품 배달 때문에 자주 가는 곳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는 자동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먼 곳이었다.


나는 다시 렌터카 업소에서 빌린 빨간색의 크라이슬러 ‘네온 (Neon)’이라는 작은 차로 시험장소까지 다녀왔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미리 길을 봐 둔 것이다.


7월12일. 시험장에는 비가 간간이 내렸다. 내 앞에 두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20세가 채 안돼 보이는 흑인 처녀는 시험을 보고 오더니, 기쁨에 못이겨서 괴성을 지르며 어머니인듯한 여자에게 시험을 보고온 얘기를 했다. “그 코너에서 완전히 정차한 사람은 나밖에 없대.” 그리고는 친구와 함께 온 말이 별로 없는 중국인이 나갔다가 잠시후 들어왔다. 그도 합격한 모양이었다.


시험관은 점쟎게 생긴 30대 후반의 남자였는데, 첫눈에도 성격이 차분하다는 것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운전을 잘 하거나 못하거나 최종적으로 합격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그 시험관이었다. 그에게는 최대한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운전을 잘 했는데도 불구하고, 시험관이 불합격판정을 했다고 불평하는 한국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던 터였다.


그러나, 나는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당했던 ‘수모’를 생각할 때,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 쓸 마음이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에게 무뚝뚝하게 대했던 것 같다. 굿모닝이라는 영어외에는 별로 말을 안했으니까.


아무튼, 정지 (Stop) 표지가 있는 곳에서는 완전히 정차하고, 제한 속도를 지키며 방향을 바꾸는 곳에서는 미리 깜박이를 켰다. 그는 “당신 너무 천천히 간다”고 불평하는가 하면, 작은 도로에서 큰 도로로 진입을 하는데, 다른 차가 멀리에서 오는데도 그냥 진입하지 않고 그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당신 저 차 오기전에 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어.” 그의 불평은 나를 불합격시킬 이유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험장에 들어가 차를 세운 뒤, 그는 말했다. “김씨. 당신 합격했어요. (Mr. Kim, you have passed.)" 내가 합격한다는 것은 반반정도의 가능성으로 보고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뛸 듯이 기뻤지만, 나는 그저 ”고맙다 (Thank you)“라고만 말했다. 그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운전면허증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5분 정도 기다리니까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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