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가 흔들린다. 전략은 있는가.
한미 간 관세 및 무역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25%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불과 하루 앞두고 이뤄진 합의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는 오직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고,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고 평가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외교적 성과 이상의 복합적 구조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번 협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상호관세율 및 자동차 관세를 15%로 설정, 반도체·의약품에는 최혜국 대우 유지, 농축산물(쌀, 소고기 등)은 현행 시장 유지, 그리고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이다. 겉으로 보기엔 한발씩 양보한 타협처럼 보이지만, 양국 언론과 산업계의 해석은 극명히 갈린다. 한국 정부는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막아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번 협정을 "농축산물 완전 개방"이라고 평가했다. 관세 수준은 일률적이지 않으며, 무관세로 유지되는 품목과 15%가 새롭게 부과되는 품목이 혼재하는 구조다. 결국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구들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농산물 시장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자동차 관세율 15%는 특히 민감한 지점이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최대 수출 품목이며, 당초 정부는 12.5% 선에서 타결하려 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15%로 상향됐다. 이는 단순한 2.5%포인트 인상이 아니다. 국내 주요 수출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4~8% 수준임을 고려하면, 관세부담은 곧 이익 전반을 갉아먹는 구조로 연결된다. 게다가 미국 내 시장에서 한국차는 일본·독일 브랜드와의 치열한 가격 경쟁에 놓여 있고,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도 높기 때문에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도 어렵다. 결국 가격을 그대로 두고 마진을 줄이거나, 가격을 소폭 올려 점유율 하락을 감수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기업들 앞에 놓여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협상이 사실상 기존 한미 FTA의 관세 혜택을 무력화한 선례가 됐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로 인해 한국 기업은 그간 확보했던 무관세 접근권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됐다. 그 결과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경쟁력 약화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조정과 투자 전략 재편이라는 부담도 함께 안게 되었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등 전략 품목에 대해서는 최혜국 대우가 유지되지만, 그것이 영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은 대미 투자펀드 3,500억 달러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 산업에 배정됐으며, 나머지는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 투입된다. 하지만 이 액수는 국내 상장사 유보금의 45%에 해당할 정도로 천문학적이며, 기업 개별 부담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책금융기관의 보증과 시중 금융기관의 대출을 활용해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펀드의 속성상 조성 실패나 중도 중단 시 손실이 투자자 전체로 전가될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 펀드가 "미국의 통제 하에 놓일 것"이라며 소유권과 집행 권한까지 언급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자금을 활용하되, 그 쓰임과 방향을 미국 산업정책에 맞춰 일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 자금이 미국 제조업 재건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 혜택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자금을 대고, 기술과 일자리는 미국에 쏠리는 ‘공급자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
한국 내 기업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규제 혁파를 외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 부담을 키우는 제도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노란봉투법은 원청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파업과 교섭 요구까지 수용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고, 상법 개정안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인세 인상안도 발표되었으며, 주 52시간제 역시 기업의 생산 유연성을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대외 관세 압박 속에서도 국내에서는 기업 활동 여건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미국 측과의 후속 협상을 통해 투자 펀드의 운용 구조, 수익 회수 장치, 산업별 이익 환류 메커니즘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에서 미국과의 호혜성을 강조하고, 한국 산업의 역할을 적극 부각시켜야 한다. 이미 한국 기업은 미국에 수십조 원 단위의 공장을 짓고,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삼아, 자금과 기술의 쏠림 현상을 최소화하고, 국부의 유출을 방지하는 장치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위기 회피’에 그쳐선 안 된다. 이는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수 있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 산업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구조적 대응에 나설 때, 비로소 이 합의는 ‘고비를 넘긴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반면 이를 단기 성과로 포장하고 지나친 낙관론에 매몰된다면, 이번 협상은 오히려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낸 기점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합의의 진짜 의미를 정부와 산업계가 얼마나 철저히 이해하고, 치밀하게 대응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