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선별하고 있는가
“태어날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과학이 던진 것이 아니다. 기술은 선택의 가능성만을 열어줄 뿐, 선택의 기준은 결국 사회가 만든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기준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2025년, 미국의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 오키드 헬스(Orchid Health)는 배아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상용화했다. 이 서비스는 체외수정(IVF, 흔히 ‘시험관 아기’라 불리는 시술)으로 생성된 초기 배아에서 몇 개의 세포를 채취한 뒤, 인간 전체 유전 정보를 해독하는 ‘전장 유전체 시퀀싱(Whole Genome Sequencing)’ 기술을 적용해 특정 질환에 대한 발생 가능성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예측치는 ‘다유전자 리스크 점수(Polygenic Risk Score, PRS)’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데, 이는 하나의 질병이 여러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다양한 유전적 변이를 통계적으로 종합해 산출한 수치다. 다시 말해, 이 점수는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보여주는 확률적 지표이지, 단정적인 진단이 아니다.
분석 대상에는 조현병, 알츠하이머병, 제2형 당뇨병처럼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만성 질환 수백 가지가 포함된다. 배아 1개당 분석 비용은 약 2,500달러 수준이며, IVF 과정 특성상 여러 개의 배아가 생성되기 때문에 전체 비용은 이보다 높아진다.
놀라운 점은 이 서비스가 연구실 수준을 넘어 실제 병원과 연계된 상용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키드 헬스는 2023년 말 약 1,2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2025년 현재 미국 내 100곳 이상의 의료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다. 일부 보도에서는 이 서비스를 이용한 인물로 전 뉴럴링크 임원이자 일론 머스크와 자녀를 둔 시본 질리스(Shivon Zilis)의 사례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당사자의 공식 확인은 없었다.
사실 배아 유전자 검사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유전 질환의 발병 유무를 미리 확인하는 ‘PGT-M’ 검사나, 염색체 이상을 선별하는 ‘PGT-A’ 검사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활용되어 왔다. 다만 이는 가족력이 있는 경우나 고령 임산부, 반복 유산 경험자 등 의학적 필요성에 따른 제한적 사용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최근 등장한 PRS 기반 분석은 단일 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특정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예측해 수치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라진다. 기술이 보다 정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용 목적이 의료적 예방을 넘어 생명의 ‘선택 기준’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점수의 정확도에도 한계는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PRS가 "특정 인종 집단에 편중된 예측력을 가지며, 환경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는 도구"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2022년 국제 학술지 『Nature Genetics』에 발표된 리뷰에 따르면, 현재 상용화된 PRS는 대부분 유럽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훈련되었으며, 이를 다른 인종 집단에 적용할 경우 예측력이 최대 5배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초기 배아는 ‘모자이크 구조’라 하여, 세포마다 유전정보가 다를 수 있는데, 검사에 쓰인 세포가 전체 배아를 온전히 대표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생식의학계에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수는 배아 이식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질병 위험도가 낮은 배아’를 선호하는 선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배아 간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키드 헬스는 공식적으로 지능 예측 점수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육 수준과 관련된 PRS를 일부 고객에게 비공식적으로 제시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 해당 보도에 대해 기업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으며, 지능 관련 유전자 분석이 실제로 제공되고 있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유전자의 선택이 단순한 질병 예방에 그치지 않고, 생명을 고르는 선별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과거 우생학은 국가가 직접 특정 생명을 배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선택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유사한 결과가 비공식적으로 재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장애인권 국제단체 DREDF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생명윤리 보고서에서는 “선택적 생식 기술이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생명을 사전에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게다가 이 기술은 자본 접근성과 밀접히 연동되어 있다. PRS 분석은 IVF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연 임신과 비교해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든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 그 부담은 전적으로 개인이 감당해야 하며, 이에 따라 ‘유전적으로 더 나은 배아’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역시 경제적 여유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UNESCO)는 2023년 공동 생명윤리 성명에서 “유전자 기술이 불균형한 접근성을 가질 경우, 인권과 인간 존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통계적 편향과 사회적 기준 위에 놓여 있다면, 이는 과학의 진보가 아니라 규범의 공백을 드러내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유전자 분석 기술은 질병을 예방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적 불균형 속에서 그것이 생명을 고르고 배제하는 도구로 작동하게 된다면, 기술은 더 이상 보호가 아니라 선별을 의미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질문은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기준은 누구에 의해, 어떤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어떤 선택도, 결코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