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다는 말로는 닿지 않는 깊은 피로가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도대체 이 짐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쳤다.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톱니바퀴처럼 나를 갉아먹는 듯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모든 관계가 노동이라는 사실을.
관계가 노동이라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해방감 대신 더 깊은 절망을 느꼈다. 사랑, 우정, 심지어 가족과의 유대마저도 끊임없이 나를 소진시키는 에너지 투입의 과정이라면, 우리는 언제쯤 진정으로 쉴 수 있을까. 상대의 감정을 읽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 감정을 적절히 포장하며,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 모든 과정들. 이 모든 것이 마치 영혼의 광산에 매일 출근하여 캐내는 감정의 연장근무 같다. 나는 왜 이 고된 노력을 멈추지 못하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서조차 완벽한 편안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순수한 기쁨만을 주는 관계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더라고. 실망스러운 구석을 발견했을 때의 불편함, 혹은 내가 그들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미안함까지. 결국 나는 그 관계의 한가운데서도 홀로 외로운 섬이었고, 타인과의 연결을 시도할 때마다 소진되는 에너지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관계 노동'으로부터의 완벽한 단절뿐일까. 아니면 이 지친 순간들을 그저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고 묵묵히 버텨내는 것일까. 붉게 물든 창밖의 하늘 아래, 나는 잠시 모든 노력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너는 단 1분이라도 진정으로 편안했니?"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무거운 침묵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