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찾지 않는 세대

by 슈펭 Super Peng



스크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밤,
손가락은 멈출 줄 모르고
다음 화면을 부른다
다음, 다음, 또 다음.

우리는 빠르게 소비하는 법은 배웠지만
천천히 앉아 있는 법은 잊었다.
시 한 줄이 열리기도 전에
알림이 먼저 문을 두드린다.


언어는 짧아졌다.
감동도 짧아졌다.
슬픔조차 이모지 하나로 압축되어
서버 어딘가에 저장된다
느껴지지 않는 채로.

백석의 국수 냄새도,
김소월의 진달래도,
이제는 입시 지문 속에서만
살아 숨쉰다.
시험이 끝나면, 함께 죽는다.

누가 이 세대를 탓하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속도의 문법으로 길들여졌고
깊이보다 넓이를 요구받았다.

감동에도 효율을 묻는 시대가
"이걸 읽어서 뭐가 남아?"
라고 묻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된 세상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새벽 세 시, 잠 못 이루는 밤에
누군가는 여전히 검색창에 친다
실연 시
위로가 되는 시
죽고 싶을 때 읽는 싶어서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인간은 결국 언어로 돌아온다.
산문으로 담기지 않는 것들을
시가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숨어 있을 뿐이다
알고리즘이 닿지 않는 곳,
좋아요가 필요 없는 침묵 속에.

시를 찾지 않는 세대도
언젠가는 찾게 될 것이다.
삶이 그들을
시 앞에 무릎 꿇게 만들 테니.

그것이 시의 방식이다.
기다림으로 살아남는 것.

스크롤을 멈추는 법을 잊은 자들에게



오글거린다



그 말이 태어난 날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진심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부끄럽게



꽃이 예쁘다고 말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눈빛이 달라진다
그 0.1초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배웠다

다음번엔
말하지 않는 법을

그렇게 한 번
그렇게 두 번

입술이 닫히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꽃 앞에 서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떠오르기 전에
스스로 지운 것인데

그 차이를
우리는 이미 모른다

언어는 그런 식으로 일한다

쓰지 않으면 녹슨다
녹슬면 꺼내기 두렵다
두려우면 더 쓰지 않는다

감각도 그런 식으로 일한다

느끼지 않으면 굳는다
굳으면 느끼는 게 낯설다
낯설면 더 느끼지 않으려 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말이 감각을 죽인 건지
감각이 먼저 식어서
그 말이 생겨난 건지

다만 이것만은 안다

오글거린다는 말은
칼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영리했다

칼은 흔적을 남기지만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진심이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들었다

가장 정교한 검열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나를
먼저 비웃는 것

남이 웃기 전에
내가 먼저 웃어버리면
덜 아프다는 것을

이 세대는 너무 일찍
너무 완벽하게
배워버렸다

그래서 시가 죽은 것이 아니다

시를 꺼내려는 순간
스스로가
먼저 시를 죽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오글거리는 것은

보고 싶다는 말도
꽃이 예쁘다는 말도 아니었다

평생
진심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오글거리다 하지 않는
가장 서늘한 비극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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