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소아과
입원환자가 있는 임상과들은 의사들이 다같이 아침에 입원환자가 있는 각 병실을 돌면서 대면 진료를 하는데, 이를 '회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턴인 나의 역할은, 전체 회진팀의 맨 앞에서서 다음 환자가 어느 병실, 어느 자리에 있는지 미리 가서 표시하는 것이다. 이걸 '회진 리딩'이라고 한다. 의학용어라고 말하기도 챙기하지만, 인턴들끼리 인계할 때 '회진 리딩'에 대한 인계가 꽤 중요하다.
호흡기내과의 경우 회진 리딩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환자들 상태가 좀 안좋아서 어차피 1년차 선생님이 각 환자의 위치를 다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건지, 아니면 내과 선생님들이 환자 위치나 회진 분위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아침에 회진을 돌긴 돌았는데, 어차피 다 남의 환자라서 전공의나 교수나 별 관심 없는 분위기였다. 내과의 경우 환자가 회진을 애타게 기다렸는데, 응급의학과는 환자도 회진에 별 의미를 두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밤새 기다린 환자들의 경우 배정된 과 의사는 언제 나타나냐는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소아과의 경우 인계를 받을 때부터 '엄마와 아이를 잘 잡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었는데, 요새 왜 이렇게 인계했는지 깨닫고 있다. 소아과는 호흡기내과에 비해서 교수님도 여러 분 계시고, 펠로와 전공의 숫자가 많은데, 왜 그런지 다 같이 한꺼번에 회진을 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의사만 한 1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교수님 5분을 제외한 10명은 모두 교수님들의 눈치를 보면서 허둥지둥하는 느낌이다. 당연히, 인턴이 환자가 입원해있는 호실이나 자리를 틀리면 3년차나 의국장선생님이 가차없이 면박을 준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은, 자리에 갔는데 엄마와 아이가 없는 상황이다.
소아과 인턴은 나 포함해서 3명인데, 첫날은 회진 리딩와 엄마 잡아오기의 분담을 제대로 못해서 회진이 아주 엉망이었다. (소아과의 회진 시스템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지만, 내가 스스로 인턴들 때문에 엉망이었다고 평가하는게 웃기다 ㅎㅎ) 자리도 틀리고, 엄마들도 어딨는지 하나도 모르고... 교수님들은 약간 언짢은 표정이었는데 한마디도 안했고, 펠로 선생님들은 기분이 많이 나빠보였다. 회진 끝나고 교수님들이 먼저 가시고, 펠로 선생님 한분은 먼저 가시고 여자 선생님 한분이 남아서 우리 인턴들을 보면서 의국장한테 몇 마디 하셨다. 내용을 듣진 못했는데, "인턴들 일을 상당히 잘한다"는 내용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 펠로 선생님까지 다 가신 후, 의국장이 우리를 따로 불렀다.
'니네 내일 아침에도 이따위로 회진돌면 셋 다 인턴성적 F준다. 너희들 F 주려면 내가 사유서 써야 하거든? 내가 오늘 사유서 초안 써놓을테니, 내일 회진 어떻게 도는지 한번 보자. '
나는 어차피 인턴 성적에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같이 있던 인턴 중 여자선생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추하건데 아마 경쟁이 있는 과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의국장선생님이 가고, 우리 셋은 작전 회의를 해서 다음 날 회진 돌 때 모든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우리가 개발한 시스템은 아래와 같다.
아침 7시에 컨퍼런스가 시작이 되는데, 한 30분 정도 컨퍼런스를 하니까 컨퍼런스 시작할 때 인턴1이 나가서 먼저 병동을 돌면서 엄마들에게 회진 시간에 가급적 자리에 계셔달라고 간곡히 호소를 한다. 7시반 정도에 회진이 시작되면, 인턴2가 리딩을 하고, 인턴1은 바로 다음 병실 엄마들을 찾아다니고, 인턴2는 다다음 병실 엄마들을 찾아다닌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고 크게 감탄했다. 인계장 어디에도 이런 시스템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우리가 A병원 소아과 역사상 처음으로 엄마 추적률 10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비장한 얼굴로 컨퍼런스를 기다렸고, 시작될 때 쯤 미리 지정한 인턴1이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그때 의국장이 인턴1을 불러세웠다. "인턴선생님, 병동일이 있어도 아주 급한거 아니면 가급적 컨퍼런스 끝까지 참여하세요." 결국 인턴1은 미리 엄마들에게 언질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인턴1과 인턴3이 뛰어다니면서 엄마들을 찾아왔고, 첫날보다는 엄마 추적률을 약간 높일 수 있었다. 내심 의국장이 '오늘은 잘했다'는 등의 칭찬을 해주길 바랬지만, 우리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에게 성적 협박을 하지는 않고 회진이 마무리가 됐다.
내가 해야되는 일이니까 하긴 하겠는데, 엄마와 아이가 병실 자리에 없으면 다같이 엄마 있는 곳으로 가면 안되나? 어차피 휴게실에 있거나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있거나 둘중 하나인데... 환자와 보호자가 병실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인턴의 평가가 갈린다는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교수님들은 인턴으로 근무한지 한참 됐을테니,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겠지. 상대적으로 의국장선생님은 4년 밖에 안됐을텐데, 교수님에게 잘보이려고 우리에게 F를 주겠다는 협박을 하다니. 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전공의가 되면 인턴들에게 성적을 가지고 협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