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진술은 진실과 다르다
사람은 진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범죄’와 관련된 진술일 때, 말은 더 조심스럽고 더 계산적이며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나는 진술분석전문가로서 수많은 진술서를 읽어왔고, 직접 분석해 왔다. 피의자의 말뿐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 참고인의 서술까지도 하나의 텍스트처럼 해체하고 해석한다. 진술 속에는 폭력과 회피, 죄책감과 방어, 자기정당화와 분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진술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진술은 기억과 감정이 결합된 심리적 문서이며,
그 문장은 종종 진실보다 깊은 심리를 드러낸다.
가장 흔한 거짓말의 동기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피의자는 법적 책임뿐 아니라 사회적 비난, 가족의 실망을 두려워하며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한 번은 40대 남성 피의자의 진술서를 분석한 적이 있다. 그는 아내에게 수년간 상습적인 폭력을 휘둘렀고, 구속 직후에도 “나는 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아내의 사진과 진단서가 그 말을 반박하고 있었다. 며칠 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을 바꿨다.
“말다툼 중에 손이 올라갔을 뿐이다. 일부러 때린 건 아니다.”
이러한 진술은 명백한 왜곡이지만, 동시에 '자기보존'을 위한 심리적 타협이기도 하다. 그는 ‘폭력적인 남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가해자는 자신을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보이길 거부한다.
그래서 진술은 항상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정당화를 동반한다.
“나는 화가 난 상태였을 뿐이다.”
“그 사람이 먼저 자극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한 일인지 몰랐다.”
이런 말들은 진술자의 심리 속에 자리한 ‘도덕적 자아’와의 타협 결과다.
특히 성범죄자나 가정폭력 가해자 진술에서는 감정이 차단된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문장은 건조하고 단답형이며, 눈빛은 공허하거나 딱딱하다.
이는 자기혐오, 수치, 죄책감을 직면하기 어려운 내면이 만들어낸 해리성 방어다.
감정을 빼낸 진술은 진실에서 멀어지지만, 동시에 그 감정 회피 자체가 중요한 심리적 단서다.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사건 당시의 강한 감정(공포, 수치, 분노 등)은 기억의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일부 덮어버린다.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싫었고, 무서웠어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기억이 감정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진실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말한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 인지적 불편을 줄이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잖아요.”
“내가 한 일은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합리화가 아니라, 자아를 유지하려는 심리적 생존 방식이다.
가해자 역시 ‘보이고 싶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상황이 그랬다”는 식의 진술은, 주변의 시선에 대한 불안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행동 결과가 너무 끔찍하거나 충격적일 경우, 진술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건의 중요도를 축소시켜 진술한다.
이는 내적 공황을 피하려는 심리적 조절이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 사건에서, 한 가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애가 먼저 안겼어요. 난 그냥 장난처럼...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었어요.”
이 진술은 범죄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심리적 왜곡이자, 동시에 죄책감에 대한 방어적 회피다.
일부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부정하거나 흐리는 진술도 많다.
“그날은 같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는 ‘일부 인정 – 전체 부인’이라는 전략을 통해 형량이나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나려는 방식이다.
반대로, 피해자의 경우 진술이 축소되거나 단절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동이나 반복적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일수록 기억이 조각나거나 무력한 형태로 남는다.
진술의 축소가 오히려 트라우마의 증거가 되는 경우다.
나는 말의 내용보다 ‘형식’을 본다. 감정보다 결말, 의미보다 흐름의 비대칭을 본다.
말의 억양, 중단된 문장, 반복되는 표현, 과장된 설명, 모호한 회피 등등 이 모든 요소가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를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진술 분석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생애, 감정, 통제되지 않은 충동, 삶 전체의 서사가 녹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범죄자든 피해자든, 결국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말을 듣고자 한다.
진술은 언제나 ‘심리적 산물’이다. 그 말 속에는 방어가 있고, 두려움이 있고, 죄책감이 있다.
진술은 진실을 감출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술을 감추려는 방식 자체가, 진실을 말해준다.
그것이 진술 분석의 아이러니다.
✒️ 작가의 메모
거짓말도 말이다.
말은 그 사람의 무의식을 말한다.
진술은 진실을 감추지만, 그 감추려는 방식 자체가 진실을 드러낸다.
나는 그 숨겨진 감정과 의미의 틈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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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진술, 그러나 진짜였던 마음”
– 스스로 피해자를 자처한 이유, 자백의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