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너 괜찮아?

나를 만나는 시간

by 그래미

아는 언니를 만났다.

좋은 환경에서, 자연스레 좋은 것을 받아들이며 자란 맑은 사람.

언니는 조건없이 내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랬다.

언니에겐 심장으로 향하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 같았다.

새하얀 구름 위에 떠 있는 폭신한 길

언니의 머리와 심장은 그 길로 통했다.


언니의 남편은 언니의 말에 몸을 기울이며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었고,

사춘기 아들은 그의 하루를 엄마에게 풀어놓았다.

언니가 받은 사랑은 남편과 아들에게 흘러갔고

언니에게 되돌아왔다.


서로를 향한 대화와 눈빛은 바다의 찬란한 윤슬과 닮아 있었다.

수많은 질문 하나하나가 빛이 났다.

서로에 대해 아주 작은 것도 알지 않고는 세상의 의미가 없을 것 처럼 보였다.


그 따뜻한 세계 속에서,

나는 혼자 조용히 가라앉았다.

빛이 다가와도 닿을 수 없는 곳.
나는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 되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고 표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내가 결코 가질 수, 이룰 수 없는 따뜻한 가족의 모습에 내 가슴 한편이 텅 빈 듯 공허했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그들의 향기가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혼자 집으로 향하는 길, 차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 숨을 참았다가 공기를 마주한 사람처럼 깊고 오래 숨을 내쉬었다.

차 안에 등을 기대고 뭉친 감정을 흐트리듯이 고개를 저었다.

핸들 위에 올린 손이 미세히 떨렸다.

도로는 건조하게 바싹 말라 있었다.


언니 가족의 따듯한 향기를 품고서

도저히 공기조차 건조하게 얼어붙은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포자기 하듯 악셀을 밟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더 세게 밟는다.


순간 숨이 잘 안쉬어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가 누구일까 기억해내려 애쓰는 순간,


차 센서음이 시끄럽게 울려댄다.

안전벨트가 세차게 몸쪽으로 당겨지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강하게 브레이크를 누른다.

빨간 신호등이 나를 가로 막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쿵쿵 거린다.


’너 괜찮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다.

누군가 귓가에 대고 말한 것처럼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빠르게 뒷좌석을 보았다.

분명 차 안에는 나 혼자 뿐이다.


오랜시간 조용히 움크려 있었던 내 마음이 말을 걸어왔다.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나보다.


‘너 괜찮은 거야?’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나를 세상밖으로 꺼내줄 수 있겠어? 그럼 너가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대답이 없는 나에게 마음은 이어서 말을 했다.

‘언제까지 거칠고 차가운 돌맹이를 품고 있을거야.. 너는 너무 무거워. 이대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아.’


그러고보니 나는 항상 무거웠고 추웠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는 항상 추웠다. 한여름에도 유난히 추웠다.

내 어깨는 동그랗게 말려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매번 애썼다.


이제서야 항상 떨고 있던 내 자신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햇살이 따뜻했던 바닷가가 떠오른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지만 자갈밭 위로 몸을 뉘였을때

내 팔과 다리는 금방 차가워져 몸을 움츠렸던 순간을.

나는 내 마음을 차가운 소금기가 밴 작은 돌맹이 속에 숨겨놓았다.
내 마음은 자갈밭에 둘러 쌓여 항상 춥고 쓰렸다.


얼마나 참았을까. 내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때마다 무시했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돌맹이 하나가 다리에 스치기만 해도 차가웠는데,
내 마음은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언니의 가족처럼 내 마음에게 몸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던가.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준 적이 있었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만 귀 기울인 건 아닐까.

내 마음은 나를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서 기다렸다.

말없이 조용히.
오늘은 처음으로 내 마음과 마주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둘러 싸고 있는 크고 작은 돌을 하나씩 내려놓기로 했다.
아주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이 무거움을 이제는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에게 말하듯, 내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는 용기를 내본다.
‘너 정말 괜찮아?’ 하고.

다시 신호등이 바뀌었다.
나는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이번엔 조금 더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