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도반의 시
색이 바랜 노트에 떨리는 손이 간다
필경사는 오랫동안 놓았던 펜을 들었다
낮은 조도의 책상등이 비추고
낡은 의자가 신음한다
마른 종이는 결의 갈라짐을 보인다
그 위를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채운다
마음에 품은 시들을 옮겨 쓴다
필압이 노트의 틈을 메우고
잠자던 내일을 오늘로 불러오고
온 신경은 엄지와 검지에 있고
하얗던 밤이 까맣게 밝아오면
들숨에 떨리던 그 순간
북 받침에 아랫입술을 깨물고 흐느끼는
쓴다는 건 국밥을 끓이는 일이다
쌀알은 토렴으로 새 옷을 입는다
국밥은 국과 밥이 따로가 아닌
고유명사 된다
토렴은 퇴염(退染)에서 변했다
다른 색으로 물들인다는 의미다 쓴다는 건 다름을 입히는 작업이다
깊어진 맛을 빈 종이에 먹인다
그릇은 아직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