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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함 앞에서 나는 관찰자가 되려 한다.

by 장유연

시골 부모님 댁에는 LPG가스를 사용한다.

어느 날 가스가 떨어져

배달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OO마을 OOO댁인데요,

가스 좀 부탁드립니다.”

“그냥 문자로 보내 놓으면 알아서 방문합니다.”


인사 한마디 없는

귀찮음이 묻어나는 답이었다.


문자를 보냈지만 몇 시간째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문자 넣어 놓으면 오늘 가는데,

왜 자꾸 전화하십니까!”


그 순간,

맞서 싸워봤자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나

곧바로 화를 내면,

내 감정의 선택권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 말이 떠올라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담담히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빨리 부탁드립니다.”




예상치 못한 불친절은 금세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상대를 바꿀 힘은 내게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다.


짜증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반응하기보다 나를 지켜본다.

‘나는 지금 무엇에 흔들리고 있지?'

그 질문 하나가 감정을 가라앉힌다.




세계적인 동기부여 코치

존 아사라프는 말한다.

"판단하지 말고 관찰자가 되어라.”


판단은 감정을 키우지만,

관찰은 감정을 다스리게 한다.

판단은 화살을 쏘지만,

관찰은 그 화살을 내려놓게 한다.


앞으로 불편한 사람을 마주할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나는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관찰자다.”


그 한마디가 즉각적인 반응 대신

차분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반응 대신 대응을,

감정 대신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성숙한 사람은

타인에게 부드럽게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힘을

조금씩 길러가고 싶다.




무례한 사람도 결국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속에서 나를 단련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그 태도가 전해져

상대도 언젠가는 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돌아보면 불편한 만남조차

나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한 걸음 나아가 있었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