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마음은 무엇으로 자랄까.
그 질문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
한 친구에게서였다.
그 친구는 전학을 온 아이였다.
그 시절 시골 학교엔 전학생이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가 유난히 궁금했다.
그 친구는 교회를 다녔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교회로 가는 모습을
우리 집 앞에서 자주 보았다.
어느 날, 여러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식사 전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식사 전
기도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몇 번을 더 보다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그 친구는 말했다.
“하느님께 이렇게 말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그 말이 낯설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만 그때는 그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다니던 회사의 상사가
교회를 오래 다닌 장로였다.
그분 역시 식사 전 잠시 기도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그 친구가 떠올랐다.
요즘은 사람들이 식사 전
어떤 말로 기도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은 한 강의를 통해
그 기도의 문장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강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음식과 양식은 다릅니다.
음식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는 것이고,
양식은 영혼을 채우는 지식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이런 해석이 떠올랐다.
‘그 지식이 어쩌면 깨달음이 아닐까.’
영혼의 양식이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내면의 진화도 멈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단지 몸을 위해 주신 음식보다,
영혼을 성장시키는 ‘양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
물론 기도의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익숙한 문장 속에서도
다른 시선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몸은 음식으로 자라지만,
마음은 깨달음으로 자란다는 걸.
오늘의 식탁 위에서,
‘나의 일용할 양식’은
마음을 자라게 하는 깨달음이 되길 바라며.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