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하기 싫은 상대에게
어쩔 수 없이 부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마음의 거리가 있었다.
말 한마디에도 서로의 의도가 엇갈렸고,
작은 일에도 오해가 남곤 했다.
그래서 부탁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그 사람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냥 내가 불편을 감수할까?'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이미 내 안에서는
그 부탁이 거절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말을 꺼냈다.
부탁은 내가 하지만
그 판단과 선택은 결국
상대의 몫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녁 퇴근 길,
차량 엔진에 불이 들어왔다.
그뿐 아니라 여러 곳이 동시에 고장 났다.
정비소에 맡겨두었지만
다음 날 회사에 갈 차가 없었다.
회사 위치가 대중교통으로는 불편한 곳이라
택시비도 부담되는 거리였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까지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훨씬 더 걸렸다.
그래서 가까이 사는 지인에게
하루만 차를 빌릴 수 있을지 조심스레 부탁했다.
"내일 하루만 차를 좀 빌릴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내일 약속이 있어서 힘들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예전 같았으면
섭섭하고, 속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미 감정을 다스린 채 부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화를 내고,
심지어 미워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부탁을 하는 건 내 몫이지만,
그 부탁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건
상대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 선택이 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탓하거나 미워할 이유는 없다.
그건 내 욕심이고
내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상대의 선택에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건,
그 사람의 판단과 삶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진짜 존중은
그의 선택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대의 어떤 반응도
이젠 내 몫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음이 편했고, 감정의 파도도 잔잔히 가라앉았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배워간다.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흘려보내는 것임을.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을 다루는 법을 조금 더 배웠다.
결국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건
언제나 내 마음뿐이었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