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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보다 무서운 건, 내 해석이었다.

by 장유연
이 글은 저처럼
작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분들,
불안의 상상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토요일 아침, 서둘러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향했다.

팔순을 넘기신 부모님 댁에서

의원이나 약국, 슈퍼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 길이라

연세에 비하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직접 병원을 다니시기엔

늘 부담이 된다.

그날은 아침 일찍 모시고 한의원에 갔다.


침과 물리치료를 받고 점심을 먹던 중,

엄마가 갑자기 한쪽 눈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보니 충혈에 누런 눈곱까지 있었다.


“한의원 들어서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더라.

물리치료 받으려고 하는데 눈이 좀 불편해서 비볐더니

그때부터 계속 그래.”


"손으로 비비면 더 안 좋아져요.

우선 깨끗하게 씻고 주말 동안은 집에 있는

점안액으로 관리해야겠어요."




나는 급히 인터넷에 ‘충혈, 눈곱’ 증상을 검색했다.

‘세균성 결막염’ 가능성,

고령자는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글,

놔두면 다른 눈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경고.


엄마가 여러 약을 드시고 계셔서인지,

작은 증상도 괜히 더 크게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벌써 엄마가 그렇게 된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졌다.


사실, 엄마 눈이 충혈된 건

대수롭지 않은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더 악화된다’는

시나리오 속에 들어가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예민해지는 거야?’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막연한 상상과 근거 없는 걱정뿐이었다.

‘그냥 병원 가서 약 처방 받고

관리 잘하면 끝나는 일인데..'




문제는 엄마의 눈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문제였다.


내 안에는 늘 두개의 시선이 공존한다.

사소한 불안을 크게 키우는 시선.

그리고 현실을 담담히 바라보려는 시선.


나는 종종, 안타깝게도 전자를 먼저 선택한다.

그러다 보면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은 한참 앞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불필요한 상상이

현실보다 더 큰 피로를 만든다.


삶의 변수는 피할 수 없지만,

그걸 바라보는 태도는 언제나 내 몫이다.


불안을 택하면

사소한 일도 큰 산이 되고,

내려놓고 흘려보내면 큰일조차 작게 다가올 수 있다.


결국 삶의 무게는 사건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연습하려 한다.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린 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 단순한 구분만으로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삶은 훨씬 유연해진다는 걸 알게 된다.




아마 이런 이야기가 담담한 분들에겐
조금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성향을 가진 분들께는,
불안을 내려놓는 연습의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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