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아침 출근길, 나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저녁에 늦게 자는 습관 탓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늘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출근길에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마음이 금세 조급해진다.
그런 날은 앞차가 신호를 놓칠 만큼
느릿하게만 움직여도
화를 참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얼마 전,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야 하는 신호는
겨우 몇 대만 통과할 수 있는 짧은 신호였다.
그런데 그날,
오른쪽 차선에서 한 차량이
신호가 이미 바뀌었는데도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결국 우리 차선은 세 대만 지나가고
내 앞에서 신호가 끊겨 버렸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정말 이기적이네.
다른 사람은 생각도 안 하나?’
그 사람의 배려 없음까지 단정해 버렸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장면이 고스란히 뒤바뀐 상황이 찾아왔다.
바로 내가, 그때 그 운전자처럼
신호 끝에 얹히듯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온
경적과 불만의 소리들.
그때 누가 내게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앞차가 애매하게 가서 어쩔 수 없었어요.
중간에서 멈추면 더 위험했어요.”
말하고 보면 변명 같지만,
그 순간의 나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때 깨달았다.
며칠 전 내가 화를 냈던 그 운전자들도
어쩌면 나처럼
각자의 이유와 사정 속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본 장면은 사실의 전부가 아니라,
내 감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가지고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내가 보고 들은 것,
그리고 느낀 감정만으로
상대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 행동은 이유가 있지만,
남의 행동은 잘못'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상대의 사정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감정 하나로
사람을 단정지어 버리려 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 판단이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내 마음의 신호등이
너무 빨리 '단정'으로 바뀌려 할 때,
그 속도를 조금 늦추어 준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