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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내 앞에 있었다.

by 장유연

때로는 아이의 말이 어른의 생각보다

더 먼 곳을 가리킬 때가 있다.

작은 아이의 한마디가

어른의 시야를 넓히는 순간이 있다.


몇 년 전,

올케가 회사 일로 바쁘던 날

내가 대신 조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던 때의 일이다.


흐린 오후, 여섯 살 조카는 차에 타자마자

창밖 풍경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무언가를 탐색하듯 호기심 어린 눈을 굴렸다.


그러다 갑자기 내게 물었다.


“우주는 어디 있어요?”


아이들의 갑작스런 질문은

종종 어른의 사고를 가볍게 뒤흔들곤 한다.

그날의 질문도 그랬다.


나는 웃으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답했다.


“음… 하늘보다 훨씬 더 위에 있어.

엄청 엄청 넓어서 우리가 다 볼 수는 없지.”


조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는 내 앞에 있어요.

내 밖에…”


그 순간에는

그저 귀엽고 엉뚱한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상상 속에서 나온 말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은 유독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문장처럼

내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우주는 내 앞에 있다.

내 밖에 있다.’




어쩌면 그 말은

아이가 의식하지 못한 채 건넨

하나의 깨달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인간은

작지만 온전한 체계를 가진 ‘소우주’라 불린다.

몸과 마음, 생각과 감정,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우주처럼 질서와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의 말은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우주예요.

그리고 나는 그 우주 안에서,

또 하나의 우주로 존재하고 있어요.”


물론 아이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닐 것이다.

설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말에는

어른보다 더 넓은 세계의 감각이

어디엔가 숨어 있었던 듯하다.


나는 그 말에서 배웠다.

우주는 멀리 광대한 어딘가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 선 나 역시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조그만 조카는

그저 지나가는 풍경을 말했을 뿐일 텐데,

나는 그 말 속에서

내 안의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주를 안다는 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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