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머물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연습
며칠 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무려 30년 만의 만남이었다.
한 친구가 결혼식장에서
또다른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고
그 계기로 자연스럽게 우리 넷이 모이게 되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그게 바로 '친구'라는 이름이 가진 힘일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철없이 까불거리며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던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전히 활달하고 야무진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세월이 더해준 삶의 흔적이 얼굴에 고요히 묻어 있었다.
추억을 더듬으며 웃고 떠든 시간은 마치 선물 같았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우리는 넷이었다.
오랜만에 쏟아낸 말들의 에너지를 감안하면
서너 개쯤은 거뜬히 깨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다꽃을 피우던 중
우리는 '운전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모두 운전을 오래 해왔지만
각자 '낯선 길'을 대하는 방식은 달랐다.
"나는 낯선 길을 갈 땐 인터넷으로 미리 경로를 확인 해.
사전 도로 주행도 해보고 어디서 차선을 바꿔야 할지도
체크한 다음에야 그 길로 가봐.
그렇게 익숙해지면 그 길로만 다녀.
다른 경로를 추천해 줘도 갈 생각이 안 들어.“
한 친구가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차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낯선 길은 여전히 불안해“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친구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와, 너희 진짜 피곤하게 산다.
난 모르던 길이 있으면 오히려 궁금해서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알고 싶고
가끔 잘못 들어서도 어차피 길은 다 연결돼 있잖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오갔지만
그 친구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 연결돼.
그걸 알게 되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져.“
그 말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 연결돼.’
마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처럼 들렸다.
다른 두 부류를 바라보며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는 익숙한 길을 고수해온 사람 쪽이었다.
새로운 것 앞에서 늘 망설였고
변화보다는 안전을 택해왔다.
무엇보다 불편함이 싫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익숙함이 아닌
낯선 불편함과 마주하는 연습이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단순한 재회의 시간이 아니었다.
각자의 운전 습관을 나누는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내 삶의 방향과 태도를 다시 되짚어보게 되었다.
나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지향해 왔지만
그 안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이 늘 따라다녔다.
돌아보면 '안정'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본래 불편한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나,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머무는 삶은 결국 멈춘 삶이다.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소유하려는 삶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짐해본다.
소유에서 존재로.
안정 속에 숨지 않고 낯설고 불편한 길을
한 걸음씩 나아가 보기로.
그 첫걸음은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 연결된다는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믿음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우리에게는 지금
'돈키호테'만큼의 무모한 모험이 필요하다.
✨시리즈 /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조각들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가끔 멈춰 서서,
내 마음과 삶의 방향을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서툴고 흔들려도, 유연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