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거리를 다니다보니 낮동안 혼자 집에 계실 노인분들을 위한 “노인 유치원” “어르신 유치원” 간판이나 플랭카드가 자주 눈에 띈다.
‘아, 한국도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나아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동시에 받고있다.
‘어르신’이라는 낱말과 ‘유치원’이라는 낱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인 어린 아이들을 낮동안 돌보면서 여러가지 유희나 교육 활동을 하는 유치원과 비슷하게, 연세 많으신 분들을 낮동안 돌봐드리면서 여러가지 교육도 하고 오락활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왜 하필 유치원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유치원의 유와 치는 각각 어리다는 뜻의 한자어인데다가, 뭔가가 성숙되지 못한 것을 보고 ‘유치하다’라고 할 때의 그 ‘유치’를 쓴다
幼稚유치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行爲), 또는 그 결과물(結果物)이) 격에 맞지 않을 만큼 수준(水準)이 낮아 얕볼 만한 상태(狀態) 나이가 어려 유아(幼兒)의 단계(段階)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면 어리석어지고 유치해지는 건가? 유치해져야 하는건가? ‘노인’이라는 단어도 단지 늙은 사람이라는 뜻이라서, 말하고 듣기가 거북할 때가 종종 있는데, 거기에 유치라는 단어까지 붙여버리니, 연세드신 분들을 너무 폄하하고 나이듦을 낮춰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의도로 이름 붙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르다거나 괜찮은 건 아닌것 같다. 너무나 무신경하고 조금은 폭력적인 이름 붙이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당신은 늙었으니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돌봐주겠다’라는 말 아닌가. 나이 들어서 젊을 때처럼 운동 능력이나 인지 능력이 무뎌지기는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그것과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할 것이다.
내 부모님이 그곳에 가셔야 한다든가 혹은 내가 더 나이 들어서 그곳을 가야된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클 것 같은데.
적절한 한국어가 없다면, 차라리 영어를 그대로 써서 ‘시니어 데이케어’라고 이름 붙이는게 감정적으로 덜 폭력적이고 중성적인 말이 될 것 같다.
또 한 가지 더, 동네나 아파트에도 ‘노인정’이라고 써붙여져있지만, 거기를 드나들고싶은 ‘노인’들은 많지않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노인이기를 거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늙었으면 노인이지, 왜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하냐. 영어인 시니어는 괜찮고 한국말인 노인은 나쁜 말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사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게는 명치를 갈기는 펀치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보고 ‘너는 늙은이야’라는 말은 내게 너무 언어 폭력처럼 느껴진다. 내가 예민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