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맞은 편의 방의 주인이 갑자기 사라졌다.
오늘, 주인이 없어진 방에는 그 주인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대신 자리를 하고 있다.
한 달 반 전에 나와 함께 집을 나섰던 엄마는 돌아오지 못하고 나만 그간의 엄마의 흔적들과 함께 집을 들어서는데, 며칠 전에 집에 돌아올 거라고 미리 인터넷에 주문했던 환자용 침대 깔개가 택배로 배달되어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장고 한 켠에 두 개에 십팔만원이나 하는 유산균 하나가 놓여있다. 자신이 쓰는 것에는 만원짜리도 몇 번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십팔만원이나 하는 유산균을 샀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가슴이 다시 답답해온다.
요 며칠 사이에, 슬픔이란 건 심장이 아니라, 깊은 배 안쪽 어느 한 구석에서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내가 꼭 살게 만들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달려온 8개월의 시간이 허사가 되어버린, 나는 실패한 간병인 딸이다.
이제 막 한국 나이로 오십이 된 딸이 칠십대 중반의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은, 슬프긴 해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은 이별일지 모른다. 아주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사람도 있고,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사람도 있고, 건강하고 멀쩡한 부모를 사고 등으로 갑자기 잃은 사람에 비하면, 적당한 시기에 인생의 순리대로 이뤄진 이별일 수 있다. 나도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도 내 슬픔의 강도를 줄여주지도 못한다.
엄마이자, 친구고, 자매였고, 마지막에는 딸이기도 했던, 대체할 수 없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이 한 순간에 도려져나간 것을 언제쯤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많은 후회들.... 좀 더 일찍 엄마의 고통을 더 이해하고 집으로 데려왔어야 했는데, 모질고 독한 소리로 환자를 푸쉬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지금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그런 것들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164센티되는 키의 엄마가 작은 단지에 담겨 납골당의 작은 공간에 봉인됐다는 것이 현실이 아니길, 어딘가에서 짠!하고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먼지 한톨만큼도 안되는 헛된 희망을 지금도 갖게 된다.
모든 자식들에게는 부모가 있고, 삶의 어느 시기 언젠가 그 부모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부모가 언젠가는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지만, 그 순간을 예측할 수 없기에, 막상 그 순간이 왔을 때 후회와 먹먹함이 온 몸을 휘감싸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헛웃음이 나오게도, 삼년동안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유교의 삼년상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영혼의 쌍둥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마지막의 심장 박동, 맞잡은 손, 힘센 포옹의 촉감들이 시간에 바래지 않고 생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