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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J Sep 02. 2020

기적의 만남

2018년 9월말,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의 집에 돌아오니, 열흘 전에 집을 떠나기 직전부터 배가 약간 아프다던 엄마가 그간 감기를 앓고 더 배가 아프단다. 100세까지 비교적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장수하셨던 외할아버지를 많이 닮은데다, 아직까지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건강을 자신하던 엄마라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일주일 이상 배가 아프다는 호소가 맘에 걸린다. 병원에 가보는게 좋겠다고 말을 해보지만, 영구 귀국을 준비하기 위해서 6개월동안 한국에서 살 생각으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갈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병원에 가볼 생각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사정상, 아빠는 병원이 거의 무료인 보험을 갖고 있었지만, 엄마는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는 낯빛이 노래진다. 인터넷을 서치해본 엄마는 점점 노래지는 얼굴빛과 등으로 이어지는 통증에 자신이 췌장암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4년 전쯤에, 친고모처럼 가깝게 지내던 오촌 고모가 췌장암 진단 후 1년이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나신 적이 있었다. 서로 혈육관계가 아닌 엄마와 고모 두분이 흔치 않은 췌장암을 진단 받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라는 막연한 생각에 말도 안되는 심한 염려라고 타박을 주고, 그렇지만 어쨌든 황달때문이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되겠기에 다음날 밤비행기를 예약했다. 인터넷으로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니 항공기 예약이 모두 만석인지 몇 번 시도한 끝에 간신히 두 장을 예약했다. 누군가 방금 예약을 취소한 건가보다. 다음날 저녁에 급하게 간략한 짐을 싸서 공항에 나가니, 아는 항공사 매니저가 날 보고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 날은 한 좌석도 비지않은 만석이란다. 노란 얼굴의 엄마와 아빠를 염려스런 마음으로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 날 한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연락을 받았다.


부모님 두 분이 잘 도착했다는 연락과 함께 비행기에서 우연한 만남을 했다는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였다. 

비행 도중 갑자기 소변 폐색이 되어 괴로워하던 아빠가 승무원에게 고통을 호소했고 의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의사를 찾는 기내 방송 후 한참을 지나,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 미국인 외모에 전라도 순천 토박이인 유명한 의사였다. 소변 폐색을 응급 처치해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얘기를 듣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예약을 주선해줬다는 것이다. 오랜 미국 생활에 한국 사정을 잘 모르던 나이많은 부모님에게는 그 의사분이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친척들이 사는 부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서 황달 치료를 받으면서 원인을 찾기 위해서 검사를 한 결과, 내 예상과는 다르게 췌장암이란다. 믿기질 않는다. 그렇지만 수술이 가능한 2기라서 빠른 시일내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조기 발견이 어려운 췌장암이 수술이 가능할 확률이 많아야 20%라는데 그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불행중 다행이라고 엄마와 나는 서로 위안을 주고 받았다.  


 10월 말 경으로 수술은 잡히고, 개복보다 부담이 훨씬 덜한 복강경 수술이지만, 어쨌든 암 수술이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사흘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으로 달려갔다. 수술 후, 혹시라도 필요할지도 모를 몇 가지를 핸드캐리 백에 담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입원실로 달려가 엄마와 재회. 예정된 수술 스케줄이 외과의사의 바쁜 스케줄로 하루가 늦어져서, 엄마를 수술실로 들여보낸 후,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있다는 소식만 듣고 나는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병원을 나서다 우연히도 수술 집도의를 마주쳐서 경과를 물어보니 까다로웠지만 수술이 잘 되었단다. 그 말에, 수술이 끝난 엄마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이 모든 과정이 3주 안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큰 대학병원 사정을 잘 아는 엄마의 친구는 있기 어려운 일이란다. 엄마와 아빠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적적인 만남에 대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간증하듯 이야기하고, 희망적인 예후를 예상했다. 하느님이 엄마를 위해 계획하신 듯 모든 것이 이가 잘 물려 돌아가는 바퀴처럼 진행이 순조로워, 하느님이 엄마를 보호하신다는 믿음과 함께 불안함 대신 약간의 안도감이 나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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