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몸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살아
딸아,
엄마는 여자로 태어나 이 나이까지 몇 번의 여성 주기를 겪었을까.
몸자체에서 일정한 활동을 반복적으로 성실히 수행하며 주인은 다이어트다 스트레스다 술이다 뭐다 잘 돌보지도 못함에도
몸뚱이가 항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호르몬을 뿌려대고 조절해 간다는 게 생각보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어.
20대에는 외모강박으로 굶기도 많이 굶고 폭식도 엄청 해 대고, 살아있고 좋은 음식으로 내 몸에 잘 먹여주기는커녕 최악으로 processed 된 정크가 일상이었지.
개념 없이 마구잡이로 내 몸을 함부로 방치하거나 학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없이 임신을 하고 건강한 너희 둘을 낳은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6개월 전 우리다 멕시코로 휴가를 가기 전 그냥 욕심에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엄마가 직장스케줄을 너무 무리하게 짠 적이 있었어, 돈 욕심이 나서 일도 많이 하고. 잠도 잘 못 자고 끼니도 좀 거르고 말이지.
그래도 쉬는 날 이것저것 잘 챙겨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주 일정하고 귀찮게나 잘 오던 생리가 멈추었어. 아마 나도 모르게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었나 봐.
3개월간 생리가 없었던 건
임신기간 2번 빼고는 처음이라 너무 무섭더라. 병원에 가서 여성 호르몬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지.
엄만 이제 44세인데 벌써 폐경인가?
별 생각을 다하다 아, 여자로 우울하더라
난생처음으로 피임약이라는 것을 먹었어. 그렇게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니 무슨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넘실대고, 식욕도 폭발할듯한 느낌적인 느낌.!!
그리고
드디어 15일 후 피임약을 끊고 기다리다 피임약에 의해 유도된 생리가 나왔고, 한 달 후 정상적으로 내 몸이 만들어낸 호르몬으로 어제 생리를 하였다.
생리가 터졌어!!
터졌다고, 이렇게 기쁠 일이냐고?
어!!! 너무 고맙더라 내 몸에게.
그래서 다짐했어.
내 몸 사용 매뉴얼, 프로토콜을 만들어 두기로,
주기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이 과정과 관련해
식사, 수면, 기분, 행동양상, 등이 리듬처럼 반복된다면
똑똑하게 프로토콜을 만들어두는 게 맞지.
생리 끝부터 배란 전까지는 무슨 음식을 먹고 운동은 어느 정도 하고, 잠은 적어도 얼마나 자야 하는지, 일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배란기 때 오는 증상이 보통 무엇이었는지 PMS(생리 전 증후군)가 오려고 하는 생리 전 주간에 조심해야 할 것, 조심해야 할 음식과 무리하지 않는 것, 잡다한 일 많이 하지 않기, 귀찮게 이유없이 컴플레인하는 동료로부터 멀어지기, 시니컬한 인간 쌩까기 등등..
PMS 때문에 아빠를 갈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엄마를 돌아버리게 하기 전 미리 아빠에게도 프로토콜을 제공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나 무디게 살았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예민 쟁이였어.
예민쟁이가 무디게 살았다는 것도 놀랍고 그간 내 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해서 몸에게 미안하고 그렇다.
이제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엄마의 몸을 공주처럼 잘 챙기고 잘 돌보고
주기에 따라 변하는 이런저런 몸과 마음을 기록해 두며
데이터를 저장해야겠어
일상 속에서 이유 없이 짜증 나고 힘이 들 땐
그간 쌓아온 기록에 근거한 프로토콜을 들여다보고
격려해 주고
맛난 것도 먹여주고
좋은데도 데려가고
뭐가 하고 싶은데, 물어봐주고,
그렇게 몸뚱이를 잘 돌봐주려고.
이걸 40대가 되어 이제야 알게 되다니
잘 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는 네가 생리를 시작하는 날부터, 잘 기억하고 항상 너의 주기 데이터를 잘 만들어두라고, 너 몸을 잘 돌보며 살아가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