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친구가 되었고, 왜 친구가 아니게 되었는가
내게는 조금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A는,
5수 끝에 대학에 입학해 20대 후반인 현재 대학생이다.
주변에서 그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든, 나는 그가 인생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등산과 드라이브를 좋아하고, 닭갈비가 먹고싶으면 혼자 춘천까지 다녀오는 활동적이고 즉흥적인 친구였다.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비하면 그의 삶은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내가 공부에 지칠때면 그와 함께 드라이브를 갔으며, 맛있는 것을 먹고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며 잠시나마 숨을 돌렸다. 내게는 부족했던 인생에서의 여유를 그로부터 느낄 수 있었기에, A가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는 느린속도로 인생을 걸어가는 것에 상처를 받을까, 속도만 중시해왔던 나에 비해 자신만의 방향을 정하고 묵묵히 걸어오는 것이 대단하다며 그의 용기를 북돋아 주곤 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대학생이라는 점을 생각해 나는 항상 밥을 사고 커피를 샀다.
그건 친구로써 당연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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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A와 시간을 보낼 때, 가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있었다.
내가 3년 전 회사에 최종합격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A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내가 소식을 전했을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삼성 아니면 취급 안하는데?"
장난이라기엔 너무도 진지하고 단호한 말투. 조금의 축하도 없었다.
그냥 잠깐 기분이 좋지 않았을거라 여기며 그저 웃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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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기억을 다시 상기시킬만한 상황이 생겼다.
A와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참여했던 댓글 이벤트에 당첨돼 여행키트를 받게되었다.
그와의 여행에서 함께 사용하면 좋을거라 기뻐하며 그에게 소식을 알렸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이랬다.
"그거 싸구려 아니야?"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는데?"
"그냥 참여한 사람 다 주는거 아니야?"
의아했다.
일말의 축하도 없었다.
보통의 친구에게서는 보기힘든 반응이 계속 이어졌다.
....
그리고 얼마전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내가 첫 자취를 하게 되어 친구들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보통의 친구들은 내게 필요한걸 물어 사다주거나, 세제나 휴지 등을 사왔다. 그러나 A는 좀 특이했다.
A는 생수 500ml짜리 20개입을 들고 왔다. 그것도 먼지가 묻은 채로.
그는 생수배달 알바를 하고있던 중이었고, 아마 일을 하며 남은 생수를 가져온 듯 보였다.
그래도 신경 써준것에 고마워하며 받았다.
내가 점심을 산 뒤 마트를 구경하다가, A와 다른 친구 B가 포도 한박스를 함께 사서 나눠가지기로 했다.
B는 내게 집들이 기념이라며 알이 가장 큰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그때 A가 내 손을 막으며 말했다.
"너는 돈 안냈으니까 가장 작은거 가져가"
내가 웃으며 걸음을 옮기자, 그는 다시 말했다.
"그럼 그건 자취방에 가서 같이먹어"
나는 이미 10만원 가까이 되는 점심을 산 상황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친구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A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항상 A와 함께할때면 앞다투어 밥을 사고 커피를 샀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돈을 더 내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친구니까.
그러나 A는 친구들의 선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작은 것이라도 단 한번 양보한 적이나 산 적이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항상 돈이 없다고 얘기하는 A와 달리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누구보다도 많이 썼다.
매일같이 끌고다니는 자동차, 매일같이 가는 카페, 꽤 자주 가는 해외여행에, 저 집들이날 들린 마트에서도 몇만원이 되는 소고기를 거리낌없이 샀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돈이 없는게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 마음이 없는거구나"
나는 혼자서 쓰는 돈에는 별 흥미가 없다.
나에게 쓰는 돈은 그 찰나의 즐거움과 물질에 불과하지만, 주변사람을 위해 쓰는 돈은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 온기를 느끼며 나도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쓰는 돈은 혼자에 비해 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A는 나의 방식과 정반대에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 마음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더 이상 그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내가 순간의 감정을 못이긴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주변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웃프게도 모두가 그의 언행을 알고 있었고 내 의견에 공감했다.
동일한 이유로 이미 끊긴 관계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후로 몇년이 지났지만 A는 그대로인 것이다.
다만, 친구들의 생각이 나와는 몇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 친구들이 A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오랫동안 추억을 쌓아온 사회에서는 만들 수 없는 "친구" 라는 점.
- 친구의 단점을 "이해" 하는 것이 진짜 친구라는 점.
- 그는 선의를 "이용" 하는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
이었다.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나는 이것을 "단점" 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친구" 라면 굳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잘됨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함께하는 찰나의 시간만이라도 자신보다는 친구를 더 위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 아닐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기에 함부로 대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고 앞으로도 그러한 추억을 더 쌓기위해 "노력"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사람이기에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A의 언행은 단점이라고 얘기하기에 앞서, 친구의 "자격" 에 미달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선의를 당연시하고 조금이라도 돌려주려는 "마음" 조차 없는 A의 행동이 이용하는게 아니라면 뭘까.
친구들의 좋은 소식에 쓴소리하는 모습은 사회에서 만난 사람보다 못하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악의가 아니며, 그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이쯤되니 나와 함께한 시간들도 나름 해석이 되었다.
나의 좋은 소식에 그러한 반응들이 나온것은, 주변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좋은 상황에 놓이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내가 힘들때 드라이브를 함께한 것은, 그가 그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내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과연 그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랄까. 불행하기를 바랄까.
그를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은 낭비라는 판단에 이르렀고,
친구들의 만류에도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
나는 묻고싶다.
친구가 되기위한 최소한의 "자격" 이 무엇인지.
친구에게 "자격" 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