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기억은 결국, 열정의 다른 얼굴이었다.”
[CONTINUITY NOTE – 아는 만큼 보인다]
어떤 물건을 보면
"이건 어디 브랜드고, 모델명은 뭐야."
하고 바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일수록
눈빛이 달라진다.
나도 그랬다.
커피를 처음 접했을 무렵,
머신 브랜드, 기물 이름을 줄줄 외워야만
‘이 세계에 들어온 사람’ 같았다.
어느 카페를 가든
"여긴 그 브랜드 머신을 쓰는군요."
혼잣말처럼 아는 척을 했고,
말하지 않아도 바리스타라는 걸
누가 먼저 눈치채주면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시작됐다.
사장님이 "바리스타세요?"라고 묻는 순간부터
말문이 트였다.
한참을 떠들고,
내가 더 잘 보이려고,
내가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라떼아트에 집착하고,
이론으로 무장하고,
남의 커피까지 평가하고.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안에
진심이 있었다.
이 일을 너무 좋아해서
너무 잘하고 싶어서
혼자 조급해졌던 시간들.
예술 분야에선,
공부를 깊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색’을 찾게 된다.
그 말이 지금은 조금 이해된다.
나 역시,
그렇게 뜨겁게 질주하던 시간을 지나
조금은 유연해진 것 같다.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나처럼 티를 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몸짓이며 말투며
누가 봐도 업계 사람이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예전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젠 그게 싫지 않다.
그 시기를 지나야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니까.
열정을 꺼내기 전에
한 번쯤은 불을 붙여야 하는 시기.
누구에게나 그런 ‘과열의 시절’은 있다.
지금은 안다.
시간이 지나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보여야 할 것’과 ‘보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태도의 깊이에서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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