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보이고 싶어서 참았다. 그게 나를 만든 줄도 모르고.
[CONTINUITY NOTE – 참을성]
빠른 년생이라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 나는
할머니 손에 애지중지 자라서인지
새로운 친구들과 낯선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것을 불편해했다.
그래서 하교 후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일은 학교 안 가고 할머니랑 집에 있고 싶다’며
엉엉 울던, 철없고 여린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타구니 안쪽이 너무 아파 걷지 못하게 되었고,
정말로 등교를 할 수 없었다.
여러 정형외과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모두 또래보다 심한 성장통으로 추정된다는 답변뿐이었다.
2~3주쯤 계속 앓던 중
유독 심하게 아팠던 날,
막내 고모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고모는 두 병원 이름을 말씀하셨고
내가 그중 한 곳을 말하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의 기억은 참 신기하고도 또렷하다.
드라마에서 병실에서 의식이 돌아오는 장면을
환자 시점으로 보여줄 때가 있는데
정말 똑같은 느낌이었다.
조용히 눈을 뜨고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들이 모두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처음 한 말은
“나… 죽는 거야?”였다.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의 심정은
지금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당시엔 드라마 속 백혈병이
‘완치가 어려운 병’으로 그려졌던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좋지 않았다.
‘아프면 일찍 철든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인 것 같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간호학과 실습생, 자원봉사로 오는 대학생들도 많고
학교 친구들도 병문안을 한 번씩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쿨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담하게 행동했다.
어른스러운 말로
‘철든 아이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골수검사 중에도 마취제에 잠들지 않으려 애쓰며
의사 선생님과 대화하려 하고
병원에서도 ‘참을성이 대단한 아이’로 유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측은하게 여겨 보호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 마음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그러려면 ‘일반적인 아이’처럼 보여서는 안 되니까
더 이상하게, 더 강하게 행동했던 거다.
항암 치료는 너무 아팠다.
하루에도 3~4번씩 울었지만,
누가 병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참을성이 대단한 아이’니까.
어쩌면, 그 이후로
남들 앞에서 참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왠만해서는 화도 안 나고,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믿었고
힘들어도 참아야만
‘약자’가 아니라 ‘우월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도 화가 나면 속으로 삭이고,
힘든 일이 닥쳐도 웃으며 넘기려 한다.
그래도 나는,
이 단련된 참을성이
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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