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써야 산다

1. 아침이 두려운 당신에게

by 못지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아침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들으며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얼른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인이었다.


힘겨움에 도로 이불속으로 파고들 때면 내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가사가 얼마나 찰떡같은 지 내 마음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조금은 그 상황을 벗어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버거웠던 것 같다.


부모님 그늘에서 달랑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던 나였는데 아이가 둘이나 생기고 남편까지 있다 보니 그들을 챙기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슈퍼우먼이나 현모양처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고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나를 잘 모르던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도 아이들도 내게 크게 바란 게 없었는데 혼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걸 보면 상당히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었나 보다.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나를 따라붙었다.


밝은 엄마, 활기찬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어두운 엄마, 침울한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아침이 괴로웠다.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하루를 시작하면 또 어떻게든 하루가 흘러가곤 하는데 그 시작이 너무 어려웠다.


꾸준히 운동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그 상황을 개선해 보려 노력했지만,


그래서 하루 중 다른 시간대에는 어쨌든 꽤 잘 지낸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아침은 어떻게 되지가 않아 죽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닝페이지란 걸 쓰게 됐다.


진즉부터 이것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차마 실천할 수 없었는데 어느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제대로 써보게 되었다.


모닝페이지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눈꼽만 떼고바로 식탁에 앉아 3쪽의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막 쓰는 행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진짜 짜증 나고 잠만 온다. 웃기고 있네. 뭘 쓰라고. 아예 주제를 정해주던가 아무렇게나 쓰라니 더 어렵자나. 근데 또 하는 나도 웃기다. 싫으면 안하면면 되지. 아 근데 아침에 우리 애들 뭐 먹이지 고민이네. 이것들이 주면 주는 대로 좀 먹을 것이지 왜 이래 까탈스럽노. 그러니까 뭐를 해줘야 맛나다고 잘 먹고 가겠노. 하아. 스트레스. 엄마 몬해먹겠네.


경상도 사람이라 사투리가 자주 나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의식의 흐름대로 막 써대다 보니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 ‘아, 나는 뼛속까지 경상도인이구나!’ 깨달았다.



마구 써 갈겼다.


나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글씨가 노트 위를 날아다녔다.


처음엔 주춤거리기도 했는데 나중엔 희열이 느껴졌다.


팔은 빠질 것처럼 아픈데 손이 멈춰지지 않았다.


내 속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졌다.


며칠이 지나니 어느새 3쪽을 쓰는 게 수월해졌다.


팔이 아파서 못 쓰지 쓸 말이 없어서 못 쓰진 않았다.


찐친들 모아놓고 밤새 수다를 떨어보라고 하면 다들 자신 있지 않나요?

잠이 와서 그만두게 되지 할 말이 없어서 그만두진 않잖아요?


여자들은 몇 시간을 통화해 놓고도 전화를 끊을 때 “그래.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라고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 이야기들을 친구들 대신 모페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속에 든 불안감, 기쁨, 슬픔, 두려움, 뿌듯함, 절망감 등을 눈 뜨자마자 모페에 쏟아내고 하루를 시작하면 어느새 아침이 불편하지 않았다.


모페를 탁 덮고 나면 개운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남편은 회사일이 힘드니까,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은 걱정하실까 봐,

친구들은 자신의 일도 벅찰 텐데….


어쩌면 그때의 나는 오롯이 나의 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모닝페이지는 그렇게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