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전장에서의 기싸움

패배주의가 무너뜨리는 마음의 대열에 대하여

by Itz토퍼

중세 역사에 관심이 꽤 많은 편이다. 그래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즐겨 보곤 한다. 동양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역사 속에 담긴 이야기와 진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한 가지, 바로 ‘전쟁’이다. 지금도 세계는 전쟁 중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영화를 볼 때마다, 어릴 적부터 늘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 전쟁이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어느 편이 더 많이 살아남았느냐로 전투가 끝나는 세계다. 한쪽이 전멸하거나 제대로 도망쳐야만 상대가 이기는 전장, 그것이 과거 전쟁의 민낯이었다. 그래서 가끔 그 시절을 상상하며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삼게 된다.


잠깐 과거의 전쟁터를 상상해 보자. 칼과 창이 부딪치고, 사방에서 사람과 말의 뜨거운 숨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오는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사람은 사람대로, 말은 말대로, 죽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이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그 잔인한 현장. 총소리도 포성도 없던 그 시절, 병사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적의 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싸워야 했다. 적의 눈동자에 비친 공포를 읽어내고, 내 안의 두려움을 억누르며 전진하는, 그야말로 극한의 전투였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 살육이 벌어지는 시점은 양측이 팽팽하게 맞붙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처참한 학살이 시작된다. 즉, 전쟁의 승패는 무기가 얼마나 날카로운가 보다 "우리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꺾이지 않는 기세에서 이미 판가름 났던 것이다. 바로 '기싸움'이다. 참으로 잔인하지만, 이것이 냉혹한 전쟁의 진실이었다.


전쟁사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다. 고대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전열이 무너지는 찰나였다는 것이다. 병사 개개인의 칼솜씨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아직 건재하다'는 집단적인 확신이었다. 한 명이 겁을 먹고 도망치면 옆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대열에 생긴 작은 균열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결국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에, 마음속에서는 이미 전쟁이 끝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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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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