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면을 배달합니다
가족이라는 세계를 짊어진 '나'에게,
아침마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조여 맨다. 거울 속에는 제법 번듯한 사회인의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서 있다. 요즘 나는 이것을 속으로 ‘출격 의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도 든다. 어젯밤 거실 소파에 허물처럼 널브러진 옷가지와 양말, 그리고 먹다만 치킨 잔해조차 치우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들었던 그 무력한 사내. 그가 오히려 나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말없이 담요를 덮어주고 돌아서고, 아이는 내 옆에 슬며시 파고들어 잠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었을 거다. 돌이켜보면 그 고요한 장면이야말로 하루 중 내가 가장 솔직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마흔다섯. 이 나이가 되니 이제는 내 얼굴이 몇 개인지 헤아리는 것조차 피곤하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장소에 맞춰 수시로 가면을 갈아 끼우며 배달하듯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이런 나 자신이 너무도 가식적이라며 자책하며 힘들어했다. 누군가를 대하고 무언가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으니까. 하지만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라는 개념을 알게 된 뒤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혼자만 끙끙거리던 나는 이중인격자가 아니었다. 다만 거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다른 가면을 갈아 끼우는 숙련된 배우였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며 위로가 넘쳤다.
연기력으로 버티는 9 to 6
오전 9시. 조금 싸늘한 공기가 흐르는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유능하고 단호한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부하 직원의 실수 앞에서는 미동도 없이 대안을 요구하고, 상사의 압박에는 노련한 미소와 숫자로 방어막을 칠 줄 안다. 이 가면은 꽤 무겁다. 하지만 이것이 없다면 나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마모되고 말았을 것이고, 그 후폭풍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다.
문제는 퇴근길이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낮 동안 팽팽하게 당겨졌던 페르소나의 고무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팀장’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자리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지친 직장인의 허기'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생각난다. 내가 이러고 있는 이 시간, 아내도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항상 생각뿐이지만, 나는 아내의 현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늘 잊지 않고 제대로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가?
그녀 역시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귀가 후 아이 숙제를 봐주고, 저녁을 차리고, 시댁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버텨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지금쯤은 거실에서 마른 옷가지를 정리하며 어깨를 주무르고, 벽시계를 바라보고 있을 거다. 그녀 곁에도 어쩌면 나와 같은 가면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은 잊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많이 미안하다고, 수고했다고 말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니 미안하다 못해 부끄럽다.
아빠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무대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왜 이리 무겁나. 그래도 현관문을 열면 또 다른 막이 오른다. “아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다시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다정한 아빠’의 가면을 쓴다. 파김치 같던 몸이 찰나의 생기를 회복하고,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비명을 질러도 헤라클레스가 되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린다. 이 얼마나 행복한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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