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0.5평의 성소, 그리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경건하게 먹어야 한다?

by Itz토퍼

아내는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에게도 늘 아이스크림은 금기시된다. 하지만 딸 보배단지와 나는 다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쯤은 순식간에 비워버리는, ‘냉동 디저트계의 포식자’다.


나른한 주말 오후, 아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우리 부녀는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공략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딸이 물었다.


“아빠, 지난번 일본 교토 갔을 때 기억나?”


그 짧은 질문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기억은 우리 부녀에게 일종의 '성스러운 농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교토였다. 어느 작은 도로변, 이름도 생경한 아이스크림 가게 칸미도코로(甘味処; かんみどころ)에는 딱 하나의 테이블만 놓여 있었다. 가게 안을 채우고 있는 건 달콤한 향기보다도 기묘한 질서였다.


더운 날씨 탓에 밖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테이크아웃 대신 구석에 웅크리고 앉거나 선 채로 '경건하게' 아이스크림을 해치우고 있었다. 마치 그곳이 디저트 가게가 아니라, 차가운 당분을 섭취하며 고해성사를 올리는 성소인 것처럼 말이다.


너무 더워 줄 서기를 포기하고 지나쳤다가, 자꾸만 미련이 남길래 다시 돌아가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많던 줄은 온데간데없고 테이블엔 딱 세 사람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비운 찰나, 운 좋게도 딸과 나는 그 귀한 '단 하나의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정면에 계신 주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던 그 자세 그대로, 자상하지만 흔들림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밖을 응시하고 계셨다. 그 미소는 마치 "자, 이제 너희의 수행 차례다"라고 말하는 무언의 신호 같았다.


그 순간, 0.5평 남짓한 가게 내부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분명 입안에 넣은 건 시원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이었는데, 기분은 정갈하게 차려진 가이세키 요리의 정점을 찍는 듯했다. 할머니의 시선 끝에 걸린 교토의 오후 햇살과 우리 앞에 놓인 순백의 아이스크림. 그리고 어느새 바깥엔 한 무리의 관광객이 줄을 서서 우리를 '관람(?)' 중이다.


by ChatGPT

보배단지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아빠, 이거 대박이야!”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아이도,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조심스레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우리는 그 작은 공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무게감에 눌려,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태도로 '아이스크림 의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한 방울조차 경솔하게 흘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할머니의 자상한 미소는 일종의 '인자한 감시' 같았고,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엄격하고도 맛있는 찰나를 보냈다.


작은 공간이 가진 힘이란 참으로 무섭다. 단 하나의 테이블과 할머니의 미소만으로도, 아이스크림 한 컵은 순식간에 도를 닦는 수행의 도구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가장 경건하게,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달콤함을 탐닉했다.


그날 우리가 먹은 건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 작은 공간이 오랫동안 지켜온 고집스러운 무게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묻곤 한다.


"그때처럼 먹을까?"

"아니~!"


"그래, 아이스크림은 그냥 차고 맛있으면 장땡이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을 피하려 옆에서 찍음 / ⓒ 2024 Itz토퍼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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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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