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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이라는 이름의 공예

2부작『국화빵과 카세트테이프』-(하)

by Itz토퍼


누군가의 매력에 대해서 정점을 찍으려면 다시 한번 누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 시절, 듣고 싶은 음악을 녹음해 주던 음반 가게 누나. 예쁜 얼굴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따뜻하고 친근한 인상이었다. 평소엔 활달하던 나도 유독 누나 앞에만 가면 착한 집토끼처럼 순해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참 웃기면서도 솔직한 반응이었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던 목소리, 입시 준비에 지친 어깨를 감싸주던 국화빵만큼이나 따뜻했던 그 마음. 누나 앞에서 나는 한 번도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내가 그때 느꼈던 이끌림이 찰나의 외모에서 풍기는 화려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 사람의 내면에 쌓여온 어떤 결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을 마주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자리로 발걸음을 돌렸다는 것을.


그리고 누나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을 곁에 머물게 하는 근원적인 매력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매력이란 타고나는 것이라 여겨왔다. 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나는 왜 모르는가, 저 사람처럼 눈을 편안하게 마주치는 것을 나는 왜 못 하는가. 그런 생각 끝에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말투를 다듬고, 제스처를 의식하고, 유머 감각이 있어 보이려 머릿속으로 미리 대사를 준비한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한 날일수록 오히려 대화가 어색해진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지만, 아마 다 보일 것이다. 사람의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해서, 공들여 꾸며진 것과 그냥 배어 나오는 것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력이 타고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공이 흙을 주무르듯, 오랜 시간 조금씩 빚어지는 것에 가깝다고. 그리고 그 빚는 과정에는 순서가 있다.


task_01kn75ps6eeqcb0mkdxfha1rjr_1775136125_img_0.jpg by Sora



먼저 덜어내야 한다.


'보이고 싶은 나'에 대한 집착이 그 첫 번째다.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포즈를 취할 때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시작한다. 대화가 아니라 공연이 된다. 가면 같은 매력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진다.


비교도 덜어내야 할 것 중 하나다. 비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조용히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의 화법을 흉내 내고 타인의 태도를 복제하다 보면, 정작 나라는 존재의 결이 뭉툭해진다. 매력이 고유함에서 온다면, 비교는 그 고유함을 갉아먹는 일이다.


서두름도 다르지 않다. 빨리 이해받고 싶고, 단번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 그 조급함이 오히려 상대를 밀어낸다. 돌이켜 보면, 음반 가게 누나 역시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 자리에, 같은 온도로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새, 이유도 모른 채 조용히 이끌리고 있었다.




덜어내는 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이번엔 지켜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는, 자신만의 속도다. 세상이 빠르게 요동쳐도 자기 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은 묘하게 도드라진다. 유행어를 쓰지 않아도, 트렌드에 재빨리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림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그 고요함이 결국 사람을 끌어당긴다.


나는 누나에게서 그걸 보았다.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어떤 날이더라도, 누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결같음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와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다짐은 쉽게 흔들리지만, 혼자만의 약속은 지킬 때마다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그 보이지 않는 성실함이 모여 자존이 되고, 그 자존은 결국 얼굴의 표정과 눈빛으로 흘러나온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생각보다 선명하게 겉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사소함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것. 거창한 것에 감동하기는 쉽다. 하지만 상대의 침묵 속에 담긴 피로를 읽어내고, 굳이 건네지 않아도 될 작은 배려를 먼저 내미는 마음은 깊은 관심 없이는 나오지 않는다. 그 섬세함이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덜어내고 지켰다면, 마지막으로 쌓는 일이 남는다.


쌓는다고 하면 흔히 지식과 경험을 떠올리지만, 많이 보고 겪었다고 저절로 깊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깊이는 그 경험을 대하는 태도에서 온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떤 사람은 정보를 나열하고, 어떤 사람은 거기서 자기만의 언어를 길어 올린다. 경험을 자신의 속으로 충분히 소화한 사람만이 대화의 밀도를 바꿀 수 있다.


실패의 기록도 정직하게 쌓아야 한다. 완벽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매력은 오히려 틈에서 생긴다. 깨진 자리를 금으로 메운 킨츠기 도자기가 흠 하나 없는 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는 것처럼, 자신의 결핍을 솔직하게 긍정하고 그것을 메우려 애쓴 흔적이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갈 틈을 만들어준다. 완벽한 사람 곁에서는 누구나 조금 긴장된다. 내 부족함이 너무 또렷이 보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질문을 쌓아야 한다. 자신을 향한 것이든, 세상을 향한 것이든. 정답을 가진 사람보다 좋은 질문을 품은 사람이 훨씬 오래 흥미롭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아직 변하고 있다는 뜻이고, 변하고 있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버리고, 지키고, 쌓는 일. 이 세 가지는 순서만 다를 뿐 결국 하나의 과정이다. 버리지 않으면 지킬 공간이 생기지 않고, 지키지 못하면 쌓아 올린 것들이 금세 허물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조용하고, 느리고, 대부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누나는 아마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살았을 뿐일 테니까. 그런데도 누나가 건네준 카세트테이프와, 이상하게 또렷이 남아 있는 국화빵의 온기 같은 것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안에 머물러 있다.


매력이라는 건 아마 그런 것이지 않을까.

환호도 없이, 드러냄도 없이, 그저 조용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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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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