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무대 위에서 흐르는 숨소리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by Itz토퍼
by Sora


오늘도 어김없이 샛별을 바라보게 되는군요.


밤새 청소 일을 마치고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를 가는지 바쁘게 거리를 달리던 찬 공기가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갑니다. 그러다 갑자기 돌아보는군요.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 정감.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듯 다시 돌아와 나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다정함에, 나 역시 손을 들어 싸늘하고도 외로운 새벽 공기를 안아줍니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가 ‘고요’라는 이불을 덮고 ‘침묵’이라는 낯선 나라로 떠난 듯합니다. 숨결조차 잠든 거리 위에서 서로의 온기를 잠시 나눈 우리는,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찬 공기도, 그리고 나도, 돌아갈 곳을 향해 다시금 걸음을 옮깁니다.


이제, 새로움을 위해 따뜻함과 마주할 시간입니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물줄기가 밤새 수고한 내 몸 위를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그 감촉은 마치 어린 시절 외할머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자꾸만 ‘왜’라는 물음을 건네는 듯합니다.


정수리에서 시작해 등줄기로 낙하하던 물방울들이 아쉬운 자국을 그리며 메말라갑니다. 침묵에 가로막힌 질문은 갈 곳을 잃고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돕니다. '왜...?'


“알잖아.”




어제처럼 서재의 불을 밝히고, 노트북 속에 잠들어 있던 글무리를 불러냅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잠이 들깬 모습으로 묻습니다.


“왜, 우리랑 항상 함께하세요?”


"글쎄... 일단은 좋으니까...,

그런데 나만의 이유라면...?


단순히 사전에 등록된 언어를 종이 위로 옮기는 기록의 작업일까, 아니면 침묵 속에 잠겨 있던 자기만의 말을 세상 밖으로 길어 올리는 고백의 과정일까?"


이 질문을 붙잡은 채 커피잔을 들다 보니, ‘언어’와 ‘말’ 사이의 미세하지만 선명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둘은 분명 한 뿌리를 가졌는데, 열매는 다른 것 같습니다.


언어는 사회가 공유하는 거대한 약속의 체계라는 딱딱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군요. 정교한 문법과 수많은 개성을 품은 어휘,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합의한 규칙들이 마치 무거운 법전으로 묶여 거대한 창고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공용 창고 덕분에 타인의 생각을 읽고, 짐작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 그 자체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군요.


창고에 가득 쌓인 물건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이지 않으면 그저 정물에 불과하듯, 언어 역시 누군가의 숨결이 닿기 전까지는 고요한 활자의 집합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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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브런치스트(Brunchist) Itz토퍼입니다. 삶과 사유,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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