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황홀경이 선사하는 일시적 망각
중국 소수민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소수민족촌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묘족의 전통춤을 보고 있는데, 무희들 가운데 정말 ‘내 스타일(?)’의 미인이 춤을 추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를 단숨에 황홀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그 무대의 공기와 분위기를 카메라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세상에!" 내가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손을 내밀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맞잡은 그녀의 손은 구름처럼 부드러웠고, 가까이서 마주한 그 미소는 내 심장을 그대로 녹여버렸습니다. 기절 안 한 게 다행이었죠.
그런데 오늘 그 순간의 황홀함을 글로 옮기려다 무심코 놀란 가슴.
“내가 방금 뭘 쓰려다 이 기억에 사로잡혔지?”
아주 제대로 정신이 나가버렸답니다.
그날처럼. "뭐야, 이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망치로 ‘쾅’ 하고 때린 듯한 전율이 일 정도니, 참 대단한 미인이긴 했나 봅니다. 남자라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는 왜 '과거의 황홀감'에 이토록 쉽게 현실을 내어주는 것일까요?
이미 20년 이상 세월이 흘렀는데.
제가 조금 이상한 걸까요?
나이가 드니 노망끼가...? 그 정도는 아니지요.
변호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자칫하다간 정말 노인네 '미녀 버퍼링'끼만 들통날 판이니.
심리적 '몰입(Flow)'의 지연된 변주: 시간의 숨 멎음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은 자아를 잊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그날 소수민족촌에서 겪은 몰입은 조금 특별합니다.
단순히 춤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내 스타일'이라는 강력한 취향과 '카메라’라는 도구가 결합해 시공간을 비틀어버린 것이죠. 렌즈라는 좁은 통로를 통해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순간, 주변의 소음과 흐르는 시간은 마법처럼 사라집니다.
신기하게도 이 몰입은 그 순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다시 그 '몰입의 평면'으로 접속합니다. 뇌는 단순히 기록된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느꼈던 분위기와 무희의 손길이 주었던 감촉을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 '실시간 재방영'합니다.
회상이 깊어질수록 현실의 소음은 소거되고, 뇌는 과거를 현재로 착각하며 모든 인지적 자원을 그 무대 위로 쏟아붓습니다. "내가 뭘 쓰려했지?"라는 물음은, 내 영혼이 잠시 현실이라는 궤도를 이탈해 20년 전 그 무대 위를 거닐고 돌아왔다는 영광스러운 부재의 증거입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정서적 잔류 현상: 심장에 새겨진 도파민의 낙인
수많은 관중이 있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요. 이건 마치 길에서 주운 로또가 1등에 당첨된 기분이랄까요. 이처럼 천운에 가까운 기쁨이나 황홀감은 우리 뇌에 거대한 화학적 파동을 일으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탁소에 맡기라고 건네주신 바지 호주머니를 정리하다 발견한 주택복권 한 장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께서는 쿨하게 ‘너 가져라’ 하셨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3등 50만 원에 덜컥 당첨된 겁니다! 70년대 당시엔 일반 직장인 연봉의 2년 치 이상이 되는 거금이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과 절반씩 나누어서 나머지는 통장으로 고고했답니다.
이처럼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며 형성된 '정서적 잔류(Emotional Residue)'는 세월이 흘러도 휘발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결정체처럼 고여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그 기억의 수면을 살짝 건드리는 순간, 댐이 터지듯 감정이 밀려와 현재의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을 통째로 삼켜버립니다. 기억의 해상도가 현실보다 선명해질 때 우리 시스템은 일시적인 과부하에 빠집니다. 이건 고장이 아니라, 거대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 마음이 잠시 자리를 비워주는 정중한 배려입니다. 참 착한 녀석이죠.
현실을 잊게 하는 '심리적 도피'의 미학: 가장 찬란한 유배
일상은 늘 건조한 긴장과 예견된 과제들로 가득합니다. 반면, 그 뜨거웠던 기억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를 무조건적인 행복으로 이끄는 완벽한 도피처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해리성 쾌락(Dissociative Pleasur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도주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긍정적 이탈'입니다. 펜을 든 손이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는 그 찰나, 저는 시공간을 초월해 생의 가장 눈부셨던 한 좌표로 '유배'된 것입니다.
그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듯한 환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현실의 피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무심코 내 손바닥을 한 번 만져보지만, 현실은 딴판인데 상상 속의 감촉은 왜 그리 보드랍게만 느껴지는지 원.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삶의 에너지: 영혼의 비상식량
기억을 되짚다 길을 잃는 경험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이 '심리적 자원(Psychological Resources)'이라 부르는 이 기억들은 우리 내면에 지어진 단단한 요새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유령 통장에 예금된 거액의 현금과 맞먹는 셈이죠.
글 쓰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꺼내 드는 주제가 뭔지 아세요? 맞습니다. 바로 '첫사랑'입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젊어지는 기분, 이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인생이 무채색으로 변해갈 때, 혹은 지독한 고독이 밀려올 때, 우리를 다시 미소 짓게 하는 이 '기억의 습격'은 생을 지탱하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글을 쓰려다 멈춘 그 정적의 시간 동안, 과거의 나로부터 현재를 살아낼 힘을 수혈받은 셈입니다.
결국,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잊는 당혹감은 우리가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의 조각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행복한 선언입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선택을 아낌없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깊은 우물 하나만 파지 마세요. 사막부터 열대우림, 바위산에서 대도시 사거리까지 이곳저곳 가리지 말고 인생 삽질을 열심히 해보시길 권합니다. 어디서 어떤 보석 같은 기억이 터져 나올지 모르니까요.
현실을 마비시킬 만큼 강렬한 기억 하나를 품고 산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언제든 꺼내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비상식량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녀의 미소는 이제 단순한 과거가 아니랍니다. 메마른 일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가장 아름다운 방해꾼이자, 내 마음속에 영원히 박제된 황홀한 봄날입니다. 지금 밖에서 촉촉하게 마른 대지를 적시는 봄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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