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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이 만든 세계는 평면일 뿐

누군가의 뒷모습만 쫓는 사유의 퇴행에 던지는 질문

by Itz토퍼
『브런치스트 잇츠토퍼의 세계』는 내면의 목소리와 상상,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 미래로 보내는 기록이다. 이 글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뒤틀어 현재의 나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하나의 서사 실험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감정과 기억은 재배열되고, 아직 오지 않은 장면들은 이미 경험된 것처럼 쓰여진다. 나는 나를 설명하기보다 다시 쓰고, 지나간 순간을 복원하기보다 새로운 의미로 편집한다. 이 브런치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시간을 다시 쓰고 있는가.” - 브런치스트, Itz토퍼


"Whenever you find yourself on the side of the majority, it is time to pause and reflect." : 마크 트웨인 (Mark Twain), 《Mark Twain's Notebook》 中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다수의 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바로 멈춰 서서 성찰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대중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기보다, 개인의 독립적인 사고를 통해 진리를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 성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by ChatGPT




나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 그 둘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손이 되었다.


왼손과 오른손.


그 둘은 서로를 보완하는 평생의 짝꿍일 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는 균형의 축이었다. 나는 양손잡이였다. 덕분에 나는 세상을 남들보다 조금 더 넓고 입체적으로 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의 세상을 좁히기 시작했다.


“왜 연필을 오른손으로 잡지 않니?”

“왼손을 사용하는 건 보기 좋지 않아.”


시골 어른들은 한술 더 떠,

“왼손잡이는 팔자가 안 좋단다”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 말들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폭력적 배려'였고, 저주 섞인 잔소리였다. 어린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이 두 개인데 왜 하나만 써야 하는지, 내가 가진 본연의 능력을 왜 부끄러워하며 숨겨야만 하는지 말이다.




결국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밥을 먹을 때도, 글을 쓸 때도 나는 ‘착하고 평범한(?) 아이’의 반열에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오른손잡이를 연기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나는 언제나 책상의 맨 왼편 끝자리에만 앉아야 했다. 틀린 쪽은 언제나 내가 서 있는 쪽이었고, 타인의 활동을 방해하는 쪽도 늘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왼손을 잊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 잊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질문이 응어리져 있었다.


‘왜 나는 나를 숨겨야 했을까. 왜 자연스러운 것이 틀린 것이 되었을까.’ 그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풍화되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더 깊게 각인될 뿐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깊이’를 최고의 미덕으로 배워왔다. 한 길만 가라, 한 우물만 파라. 그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지만, 결코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다.


한 방향만 제대로 파는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의 다른 능력을 사장하면서 그러라는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 길만 가는 사람이 잘못 간다는 뜻도 아니다.


지금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깊어지는 사람보다,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는 유연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깊이만 고집하는 사람은 파고 또 파 내려가다 결국 자기만의 좁은 구덩이 안에 갇히고 만다. 반면 넓이를 가진 사람은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와 기꺼이 조우한다.




사유의 방식도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는 익숙한 사유의 틀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며 안주하려 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을 마주하면 대화하고 탐구하기보다 거리를 두는 쪽을 택하곤 한다.


습관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직장이 다르고, 심지어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종교가 다르다고, 출신이 다르다고, 심지어는 수저 재료가 다르다고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 그뿐인가, 아파트가 임대라고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쫓아내는 소금쟁이 같은 ‘인간들’도 있더라.


“나와는 다르다.”

그러니, “그건 틀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단호하게 선을 긋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헛공부한 것은 아닌지, 정작 자기 자신이 무엇이 다른 지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님에도, 그 완고한 말들은 사실 자신의 ‘사유나라’에 스스로 출입금지 명령을 내리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차별과 불평등이 사회적, 사고적, 사유적 진리가 된다면, 그 역시 영원히 그 두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왼손을 숨기며 살았던 그 긴 시간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두는 연습이었으며, 고유한 창의성을 매장하는 고통스러운 훈련이었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숨기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숨겨야 할 타당한 이유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내가 필요할 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 감각이 얼마나 편리하고 경이로운지 모른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본연의 나로 돌아온 지금, 내 양손은 글무리들과 함께 자판 위에서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다.


억압된 감각을 깨워 세상을 온전히 만질 수 있게 된 지금, 비로소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느낀다.


그런데 또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시나요?”



“저는 양손잡이입니다.”





"내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는가, 아니면 너무 많은가. 나는 어디에?"


'브런치스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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