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 톺아보기

by 이진



이전까지 이보다 더 충격적인 논문은 없었다.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라. 즉, 지구가 25년마다 반으로 쪼개져 반은 현재의 궤도를 계속 돌고, 나머지 반은 태양계를 돌다가 불이 붙어 폭발한 뒤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머지 반쪽으로 아이들, 부모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수 있는 모든 소중한 것을 옮기며 아우성을 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구의 어느 쪽 절반이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맬서스의 표현은 이것과는 사뭇 달랐지만, 당시 사회에 이에 못지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中



맬서스는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지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하여 인류가 끊임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출생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다소 터무니 없게 느껴진다.



이처럼 맬서스의 예측은 오늘날의 현실과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맬서스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현대사회에서 사실상 실패한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오늘은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어떠한 주장을 펼쳤는지, 또 왜 그의 이론이 현대사회를 반영하기 어렵게 되었는지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맬서스의 암울한 예언


맬서스는 인구가 억제되지 않을 경우, 식량생산이 결코 인구증가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펼친다. 맬서스의 이론에 따르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Malthusian-curve-Population-grows-exponentially-and-food-res


기하급수적(혹은 등비수열, 지수함수)이라는 말은 일정한 비율로 곱해지며 증가하는 수열을, 산술급수적(혹은 등차수열, 일차함수)이라는 말은 일정한 값만큼 더해지며 증가하는 수열을 뜻한다.



예를 들어, 현재 인구와 식량이 모두 1인 상태라면 인류는 1, 2, 4, 8, 16, 32, 64, 128, 256· · · 의 형태로 늘어날 것이지만, 식량은 1, 2, 3, 4, 5, 6, 7, 8, 9· · · 의 형태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수천 년 뒤에는 인구와 식량 간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확히 하자면, 맬서스가 인구의 증가로 '인류가 종말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인류는 종말에 이를 수 있지만, 그 전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몇 가지 제어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쟁, 기아, 역병이다. 맬서스에 따르면, 이러한 제어수단은 인류를 과잉 인구로부터 구해(?)주는 역할을 한다.



제어수단이 지속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인구 증가는 자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억제된다. 즉, 인구 성장률은 식량 생산률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가 이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쟁과 역병으로도 '인구 감소'라는 임무가 완수되지 않으면 불가피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인구는 순식간에 식량 생산량 수준으로 감소한다. 그는 기근을 '자연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치명적인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아이를 낳아 인구가 증가하고, 질병, 전쟁, 기근 등이 발생하면 생계수준이 하락하며 인구가 감소한다.



인구가 감소하면 임금이 증가하며(노동인력의 공급이 감소하기 때문) 생계수준이 다시 상승하고, 노동자들이 다시 많은 아이를 낳아 인구가 증가하면 질병, 전쟁, 기근 등이 발생하면서 생계수준이 또다시 하락한다.



이러한 악순환이 발생하며 인구의 삶의 질은 최저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이를 맬서스의 덫(Malthusian Trap)이라고 일컫는다.



위의 제어수단은 '사망율을 높이는' 측면의 적극적 수단에 해당하는 반면, 맬서스는 적극적 수단이 작용하기 전 '출산율을 낮추는' 측면의 예방적 수단 역시 존재한다고 보았다.



맬서스의 입장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결국 가족의 생계수준을 낮추는 행위밖에는 안되었다. 그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경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만, 빈민층은 자녀수에 따라 더 많은 빈민구제수당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빈민구제법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식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빈민구제법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자녀를 갖도록 조장해, 인구 증가로 인한 각종 문제들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빈민구제법이 선의로 제정된 제도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아, 빈곤, 질병과 같은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맬서스가 빈민구제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가 빈민층을 멸시했다는 오해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맬서스의 인구론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온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예방적인 억제가 실패해 적극적인 억제(전쟁, 기근, 역병)가 작용할 때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입는 것은 결국 하층계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방적 수단으로 인구 증가가 억제되지 않으면, 상당수의 인구가 가난 속에서 살아가다 결국 전염병이나 전쟁, 기근 등의 적극적 수단에 의해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이 강제로 조정될 것이라고 보았다. 인구가 사회적·자연적 생산 능력을 초과해 증가하게 되면, 인류 전체의 생계 수준은 필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었다.



이러한 맬서스의 주장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후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토머스 칼라일은 맬서스의 글을 읽은 뒤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의 낙관론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허황된 데 비해 맬서스의 분석은 꽤나 치밀하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대 영국 수상 피트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받아들여 빈민구제를 축소했고, 그의 이론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세계의 인구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나 60년대 한국의 가족계획 표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가 그 예이다.




맬서스가 간과한 것들


그의 이론이 힘을 얻었던 것도 잠시, 앞서 언급했듯 맬서스가 예언한 미래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잘못된 결론이 도출된 이유는, 그의 논리 전개 과정에 몇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사소한 문제는 그가 사용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통계학적 오류를 저지른 데 있다.

맬서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자료로 사용한 인구통계조사 자료에서, 미국의 인구증가율 중 이민자 유입에 의한 인구 증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다. 출생으로 인한 인구 증가와 외부 유입 인구를 혼동하는 바람에 인류의 출산과 생식능력을 과대평가했고, 인구증가율을 잘못 예측하게된 것이다.



이보다 더 중대한 실수는, 그가 농업혁명의 파급력과 기술 발전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영국의 농업혁명으로 인해 농기구 기술 발전, 윤작의 도입, 품종 개량, 값싼 화학비료 보급 등이 이루어지며 농업 생산량은 맬서스의 예측과 달리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맬서스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되었다.



또한, 경제학자들은 맬서스가 인구 증가의 단계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구 변천의 네가지 단계에 따르면, 인구 증가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1) 전산업사회 단계: 출산율과 사망률이 모두 높아 인구가 일정 수준을 유지


(2) 초기 산업사회 단계: 의학 발전과 보건 위생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져 인구가 빠르게 증가


(3) 후기 산업사회 단계: 도시화와 피임 기술의 확산으로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며 완만한 성장곡선을 그림


(4) 사회의 완숙 단계: 교육 수준 향상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출산율과 사망률이 모두 낮아 인구가 안정된 수준을 유지


맬서스는 이처럼 출산율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3단계와 4단계를 목격하지 못했고, 예측하지도 못했다. 그는 인구가 한없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지만, 실제로는 사회 발전과 의식 변화에 따라 출산율이 스스로 조절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이처럼 과학 기술 발전과 사회 구조 변화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가'라는 맬서스의 두가지 주요한 주장은 모두 현시대의 상황과 괴리를 보이게 되었다.



한편, 그가 인간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는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맬서스에게 인간은 그저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은 그 자체가 혁신적인 자원이다. 맬서스는 이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후일 인간이 이루어낼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라는 기차가 굽이길을 돌 때마다, 지식인들은 차 밖으로 튕겨 나간다. - 칼 마르크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中


역사는 마치 기차와 같다. 굽이길을 돌 때마다, 즉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기존의 이론들은 하나둘씩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며 그 힘을 잃게 된다.



맬서스의 이론 역시 한 시대를 뒤흔든 주역이었지만, 역시 기술 발전과 사회구조 변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차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인구폭발을 우려했던 맬서스의 후손들이 오히려 인구절벽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다. 그의 이론은 '자원의 한계'에 대해 선구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우리는 기후 변화나 에너지 부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맬서스의 이론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변화가 찾아오며 완전히 빗나간 예언이 되어버렸다.



이는 아무리 정교한 이론이라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도 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정책을 마련함에 있어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타개해나가기 위해서는 비관적 예측에 매몰되지 않고 인류의 힘을 신뢰하는 태도 역시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9070533491

https://itempapa.com/인구론-들어보기는-했는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생지원금? 호텔경제학? '승수효과' 핵심 이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