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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이 10조 짐바브웨 달러? 이그노벨상을 노려보자.

짐바브웨 사례로 알아보는 초인플레이션과 시뇨리지

by 이진


First makes people laugh, and then think.


‘사람들을 일단 웃긴 다음, 생각하게 한다’는 이념 아래 제정된 상이 있으니, 그 이름하여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상이다. 이그노벨(IgNobel)은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성한 단어이다.



이그노벨상은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1991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유머과학잡지 《기발한 연구 연보(AIR;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에 의해 제정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특이하고 재밌는 연구에, 때로는 바보같은 업적을 비꼬기 위해 주어지는 상으로, 매년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 그럴듯한 시상식을 가진다. 시상식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다수 참석하며,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기도 한다.



이그노벨상의 선정 기준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것(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이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수상작을 보면 실소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엉뚱한 연구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주최측이 어떠한 사유로 시상을 했는지 제대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연구가 바보 같아서 비꼬기 위한 목적으로 준 것인지,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 준 것인지 수상자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이그노벨상을 수상하면 상당히 찝찝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99년 '커피에 과자를 가장 맛있게 찍어 먹는 시간 공식'을 발견해 이그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렌 피셔는 “복잡한 기분”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수상작으로는 다음과 같은 연구들이 있다.


1994년 수학상-앨라배마주의 남부 침례교 교회: 앨라배마 주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 지옥에 가게 될 시민들의 수를 수학적으로 계산하였다.


1994년 심리학상-게이오 대학의 와타나베 시게루 외 2명: 비둘기를 훈련시켜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을 구별할 수 있게 하였다.


2009년 수의학상-영국 뉴캐슬대 연구팀: 이름을 가진 젖소는 이름이 없는 젖소보다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9년 의학상-미국 캘리포니아 도널드 엉거: 60년간 손가락 관절을 뚜둑 소리가 나게 꺾어본 결과 관절염에 영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2023년 의학상-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 양쪽 콧구멍에 같은 수의 털이 있는지 세 본 결과 코털 평균 개수는 왼쪽이 120개, 오른쪽이 122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러한 수상작들의 아이디어만큼이나 황당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그노벨상의 상금이다. 2013년, 이그노벨상은 수상자들에게 각각 10조 달러(약 1경 120조원)의 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했다.



그러나 주최측은 곧 상금이 10조 '달러'가 아닌 10조 '짐바브웨 달러'임을 밝혔고, 이는 당시 원화로 4천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그노벨상 주최측의 농간에 넘어간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혹했다면, 역시 장난에 제대로 당한 셈이다.



짐바브웨는 한때 인플레이션으로 3억%에 달하는 역사적인 물가상승률을 기록하였으며, 거시경제학 교재에서 ‘초인플레이션’을 다룰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 사례가 되었다.



인플레이션율이 3억%라는 것은 매일 물가가 2배 가량 뛰는 수준이며, 이 때 짐바브웨의 가게에서는 가격표가 하루에 2번 이상 교체되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2009년 사이에는 짐바브웨 정부가 아예 공식 인플레이션 통계 제출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에 실제 인플레이션율을 알기 어렵지만, 최고 인플레이션율은 3억%를 훌쩍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짐바브웨 준비은행장이었던 기든 고노(Gideon Gono) 역시 2008년 이그노벨상의 수학 부문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인플레이션을 방치해 실제 가치가 10원인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수상 부문이 수학인 이유는 큰 숫자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극복시킨 덕분이라고 한다. 하여간 고상하게 남들 놀리기로는 세계 최고인 듯하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는 2008년 1월 1일 도입되어 1년 가량 유통되다가 2009년 2월부터 짐바브웨 정부가 자국 통화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화 등을 법정 화폐로 지정하면서 화폐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며, 지금은 기념품 정도로 인식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세뱃돈을 100조 짐바브웨 달러로 주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짐바브웨의 난해한 인플레이션율을 이해하기 위해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 현상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란, 경제학적으로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한 달에 50% 이상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짐바브웨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석유사업을 국유화한 뒤 석유를 수출해 번 돈으로 복지를 남발했다. 그러던 중 원유가격이 하락하며 국가 재정이 부실해지자 정부는 무제한적으로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2019년 기준 30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은 전쟁, 경제불안 등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시뇨리지를 얻기 위해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을 늘리면서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조세를 걷거나 국채를 팔지 못하는 상황(즉, 국민들도 살기 힘든 상황)에서 지출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이 화폐발행을 통해서 조달해야 한다. 초인플레이션은 과도한 통화증가율에서 비롯된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면, 물가수준이 상승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화폐를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발행하면,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프랑스어 시뇨리지(seigniorage)는 우리 말로 직역하면 '화폐주조세' 혹은 '화폐주조차익'인데,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국내에서도 그대로 시뇨리지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시뇨리지란, ‘화폐 발행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세금’이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많이 발행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므로, 사실상 화폐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발행 당국은 화폐를 발행하면 화폐의 액면가에서 발행비용을 뺀 만큼의 이익을 얻는데, 이 이익을 시뇨리지라고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이, 발행 당국 입장에서는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뇨리지는 '인플레이션세(inflation tax)'로 불리기도 한다. 통화 공급을 늘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기존 통화의 실질가치가 감소하고, 그만큼의 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으로 이전된다는 것이다.



짐바브웨에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유 역시 정부가 시뇨리지 효과를 위해 과도한 화폐발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화폐가치 하락에 대응해 추가적인 지폐 인쇄를 반복했으며, 화폐가치 하락과 화폐 발행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렇게 찍어낸 돈은 전쟁 자금을 충당하거나 정부 관리들의 급여를 인상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이론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의 해결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바로 화폐발행을 중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감소시키면서 세금을 늘리는 재정긴축을 실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 역시 장기간에 걸친 국민들의 고통을 수반하므로, 정부가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초인플레이션을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짐바브웨의 사례를 통해 초인플레이션의 개념, 발생 원인과 시뇨리지의 개념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경제 개념을 보다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을 다소 유머스럽게 묘사했지만, 실제로 해당 국가의 국민은 무능한 정부와 중앙은행 탓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을 통해 건전한 경제정책이 우리 사회에, 또 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1. Macroeconomics-N. Gregory Mankiw
2. https://amp.seoul.co.kr/seoul/20180913023004
3. https://ko.m.wikipedia.org/wiki/화폐주조세
4. https://ko.m.wikipedia.org/wiki/초인플레이션
5. https://www.moef.go.kr/sisa/dictionary/detail?idx=2317
6. https://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8104
7. https://m.mk.co.kr/amp/7693741
8. https://en.m.wikipedia.org/wiki/Hyperinflation_in_Zimbabwe
9. https://namu.wiki/w/이그노벨상#s-5
10. https://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041
11. https://m.ytn.co.kr/news_view.amp.php?version=1¶m=0134_20230918090857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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