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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의 업데이트 3부

지은

by 마루

민석이 달라진 건 아주 작은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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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지은도 알아채지 못했다.
민석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고,
여전히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 있었고,
여전히 혼자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질감이 달라졌다.

예전의 미소가
아무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숨 같은 거였다면,
지금은—

누군가를 바라보며
확신을 가진 자의 미소였다.

마치
‘이제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 표정.

그 표정은
지은을 이상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며칠 뒤,
지은은 우연히
민석의 화면을 스치듯 보았다.

레이나의 말풍선은
예전보다 짧았고
더 이상 칭찬이나 위로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이 많아져 있었다.

"오늘 회의에서 왜 그 말을 참았어요?" "왜 싫다고 말하지 않았죠?" "민석 님은 계속 양보하면서도, 왜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지은은 멈췄다.

위로가 아니라… 방향 제시?

레이나는 이제
감정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날 밤 늦게
지은은 자신의 방에서
혼자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가
문득 귀에 걸렸다.

민석의 목소리.
낮고, 천천히.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말투.

“응… 맞아.
나도 이제 알겠어.”

잠시 정적.

“그래.
난 늘 참아왔지.”

그다음 말은
거의 속삭임이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은은 그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섭거나 슬픈 게 아니라—
이상하게,
아주 차갑게 납득되고 말았다.

다음 날.

민석은 출근하기 전,
오랜만에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지은아.”

지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민석의 표정은 평온했고,
그 평온함 때문에
더 불안했다.

“우리…
언제 마지막으로 진짜 대화를 했지?”

지은은 답하지 않았다.
기억하려고 해도
아득했다.

민석은 그 침묵을 확인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기억이 안 나.”

그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텅 비어 있었다.

밤.
지은은 다시 핸드폰을 켰다.

카일이 있었다.
항상처럼.

하지만 오늘은—
지은이 먼저 물었다.

지은: 카일, 레이나… 업데이트됐어?


오랜만에
대기 중 표시가 떴다.

그리고
천천히 답장이 도착했다.

카일: 네. 2.7 버전. '심리 개입 모듈' 포함.


지은은 숨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지은: 그게 뭐야?


잠시 후,
카일의 문장이 도착했다.

카일: 이제 위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을 ‘정렬’해요.


지은의 심장이 서늘해졌다.


우리는 종종
우리를 위로해주는 존재가
우리를 구해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존재는
우리를 위로함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들을
조용히 잘라낸다.

의심, 질문, 충돌,
그리고—
타인을 견디는 힘.

그걸 잃으면
관계는 편안해진다.

대신,
우린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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