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욕망
[단편소설] 픽셀의 무덤, 혹은 40조의 행방
1. 박제된 욕망
모니터 속 원숭이는 지루해 보였다.
반쯤 감긴 눈, 입에 문 담배, 그리고 촌스러운 선글라스. 3년 전, 사람들은 이 그림 파일을 ‘디지털 금괴’라 불렀다.
“이게 얼마라고요?”
“현재 시세로 3억 2천입니다. 내일이면 4억이 될지도 모르죠.”
그때 갤러리 큐레이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강남 한복판,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몽환적인 하우스 음악이 공간을 채우던 밤이었다.
벽에 걸린 것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덧칠한 그림이 아니었다.
거대한 LED 스크린 속에서 픽셀로 이루어진 원숭이가 껌을 씹듯 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원숭이를 샀다.
정확히 말하면 원숭이 그림이 아니라, 블록체인 어딘가에 적힌 ‘소유권’이라는 한 줄의 코드를 샀다.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서울 외곽의 전세 보증금이 빠져나갔다.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내 전자지갑에 찍힌 해시값은 내가 이 ‘선택받은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증명했다.
그것은 입장권이었다. 광기라는 이름의 파티장으로 들어가는 티켓.
2. 환각의 춤
파티는 뜨거웠다. 뉴스를 틀면 유명 래퍼가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을 원숭이로 바꿨다는 소식이 나왔다.
운동선수는 경기장 대신 메타버스 땅을 샀다고 인터뷰했다.
“이건 혁명이야. 복제 불가능한 고유성(Non-Fungible). 그게 미래의 화폐라고.”
동호회 단톡방의 알람은 24시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50배를 벌었다며 슈퍼카 핸들 사진을 올렸고, 누군가는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 불렀다. 우리는 우리가 스마트하다고 믿었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구시대의 유물’이라 비웃으며, 우리는 픽셀 덩어리를 주고받았다.
가격표는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1억, 5억, 10억... 숫자가 불어날수록 원숭이의 표정은 더 오만해 보였다.
아니, 오만한 건 우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하지 않았다.
이 돈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이 막대한 유동성이 정말 이 그림 쪼가리의 가치에서 나오는 것인지.
사실 그 돈은 생산된 적이 없었다.
그저 뒷사람의 주머니에서 앞사람의 주머니로, 빚에서 빚으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3.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
붕괴는 소리 없이 찾아왔다. 비명도, 폭발음도 없었다.
그저 거래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이 저점 매수 기회’라던 선동가들의 외침이 하나둘 사라졌다.
유명인의 SNS에서 원숭이 사진이 내려가고, 다시 평범한 셀카가 올라왔다.
3억 2천만 원. 내 전자지갑 속 원숭이의 마지막 거래 가격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호가창을 확인했다.
‘최고 매수 호가: 2만 5천 원.’
수수료를 빼면 남는 것도 없는 가격. 40조 원이라 불리던 거대한 시장이 증발했다.
사람들은 돈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뉴스 앵커도 심각한 표정으로 “40조 원 증발”이라는 자막을 읽었다.
나는 식은 커피를 들이키며 픽셀 원숭이를 노려보았다.
정말 돈이 사라졌을까?
4. 돈의 종착지
아니, 돈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처럼, 자본도 형태만 바꿀 뿐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
내가 낸 3억 2천만 원. 그 돈은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
그날 파티를 주최했던 거래소 사장의 강남 빌딩 기둥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초기에 원숭이를 발행하고 홍보했던 마케팅 팀의 고급 세단 엔진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이제 예술보단 현금이지”라며 조용히 털고 나간, 내게 이 원숭이를 팔았던 그 누군가의 안락한 노후 자금이 되었을 것이다.
40조 원은 공중분해 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미들의 통장에서 빠져나와, 소수의 영리한 설계자들의 금고로 ‘이체’되었을 뿐이다.
화면 속 원숭이가 여전히 지루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녀석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멍청한 놈.”
녀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게 픽셀로 지어진 신기루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신기루의 끝에 서 있는, 막차를 탄 사람이 겪게 될 경악스러운 파국을.
나는 조용히 모니터의 전원을 껐다. 방 안은 다시 어둠에 잠겼고, 내 3억 원짜리 원숭이도 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할부금이 남은 컴퓨터 본체의 웅웅거리는 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