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편 소설] 황금비늘을 밟다 — 비가 쏟아질 때

팍트기반 소설

by 마루


[단편 소설] 황금비늘을 밟다 — 팩트기반 소설


비가 쏟아질 때, 세상은 원래보다 더 진실해 보인다.

빛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람의 마음도 비처럼 묽어져 흘러가는 순간.

충주호를 따라 달리던 차 안에서, 나는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상류엔 금광이 있었지.

사람들은 산을 파헤치며 금을 찾았지만,

진짜 금은 강이 다 가져갔어.”




그 말엔 농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비릿한 웃음이 붙어 있었다.


“비 온 날 절 마당을 가봐.

거긴 모래가 아니라 별이 깔려 있어.”




그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내 차는 이미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목적지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중의 절, 석종사.




비가 그친 건 마침표처럼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구름이 걷히며 내려온 한 줄기 햇빛이 젖은 땅과 나를 동시에 비췄다.


사그락.


잘 다져진 마사토 길을 밟는 감촉이 묘하게 차분했다.

그리고—나는 그걸 봤다.


젖은 흙 표면 위로, 셀 수 없는 점들이 일제히 반짝이고 있었다.

물기 때문만은 아니다.

돌가루 같고, 금 같고, 운모 같고, 모래 같으면서도…

한 번 보면 눈에 계속 남는 빛.


나는 반쯤 본능처럼 손바닥에 모래 한 줌을 담았다.

햇빛 아래서 그 작은 알갱이들은 마치 내가 오래 기다린 답처럼 빛났다.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데,

정작 부처님은 황금을 마당에 깔아놓으셨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쩐지 인간이란 종이 귀엽기도 하고, 좀 서글프기도 한 순간.


그때, 스님 한 분이 조용히 마당을 쓸고 지나갔다.

빗자루가 지나갈 때마다 금빛 먼지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나는 묻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입이 먼저 움직였다.


> “스님, 이거… 정말 금인가요?”




스님은 잠시 나를 보며 웃었다.

대답은 단순했고, 기가 막히게 정확했다.


> “그걸 금이라 부르는 건 마음입니다.

어떤 이는 이걸 사금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흙이라고 부르지요.

손님 눈에는 어떻게 보입니까?”



나는 그 질문을 가져온 채,

손에 쥐었던 모래를 천천히 바닥으로 흘렸다.


바람이 지나가며 금빛 알갱이들이 사르르 흩어졌다.

처음 있던 자리로, 흙으로 돌아가듯이.



---


돌아오는 길.

신발 밑창에 묻은 모래 몇 알이 유독 반짝거린다.


서울의 회색빛 보도블록 위에서도

이 작은 입자가 여전히 빛날까?


아니면—

빛난 건 애초에 모래가 아니라

그걸 바라보던 내 마음이었을까.


비가 멎은 충주의 오후,

나는 금을 밟은 것도, 주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지니고 있던 욕망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혹은 얼마나 집요한지—

그걸 잠깐 들여다 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비 오는 날, 그 절 다시 갈 거예요.

이번엔 사진기로, 아니…

확신 없이 반짝이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빗속에서 시작된 노래 — Suno + 사진 실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