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트기반 소설
[단편 소설] 황금비늘을 밟다 — 팩트기반 소설
비가 쏟아질 때, 세상은 원래보다 더 진실해 보인다.
빛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람의 마음도 비처럼 묽어져 흘러가는 순간.
충주호를 따라 달리던 차 안에서, 나는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상류엔 금광이 있었지.
사람들은 산을 파헤치며 금을 찾았지만,
진짜 금은 강이 다 가져갔어.”
그 말엔 농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비릿한 웃음이 붙어 있었다.
“비 온 날 절 마당을 가봐.
거긴 모래가 아니라 별이 깔려 있어.”
그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내 차는 이미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목적지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중의 절, 석종사.
비가 그친 건 마침표처럼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구름이 걷히며 내려온 한 줄기 햇빛이 젖은 땅과 나를 동시에 비췄다.
사그락.
잘 다져진 마사토 길을 밟는 감촉이 묘하게 차분했다.
그리고—나는 그걸 봤다.
젖은 흙 표면 위로, 셀 수 없는 점들이 일제히 반짝이고 있었다.
물기 때문만은 아니다.
돌가루 같고, 금 같고, 운모 같고, 모래 같으면서도…
한 번 보면 눈에 계속 남는 빛.
나는 반쯤 본능처럼 손바닥에 모래 한 줌을 담았다.
햇빛 아래서 그 작은 알갱이들은 마치 내가 오래 기다린 답처럼 빛났다.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데,
정작 부처님은 황금을 마당에 깔아놓으셨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쩐지 인간이란 종이 귀엽기도 하고, 좀 서글프기도 한 순간.
그때, 스님 한 분이 조용히 마당을 쓸고 지나갔다.
빗자루가 지나갈 때마다 금빛 먼지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나는 묻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입이 먼저 움직였다.
> “스님, 이거… 정말 금인가요?”
스님은 잠시 나를 보며 웃었다.
대답은 단순했고, 기가 막히게 정확했다.
> “그걸 금이라 부르는 건 마음입니다.
어떤 이는 이걸 사금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흙이라고 부르지요.
손님 눈에는 어떻게 보입니까?”
나는 그 질문을 가져온 채,
손에 쥐었던 모래를 천천히 바닥으로 흘렸다.
바람이 지나가며 금빛 알갱이들이 사르르 흩어졌다.
처음 있던 자리로, 흙으로 돌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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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신발 밑창에 묻은 모래 몇 알이 유독 반짝거린다.
서울의 회색빛 보도블록 위에서도
이 작은 입자가 여전히 빛날까?
아니면—
빛난 건 애초에 모래가 아니라
그걸 바라보던 내 마음이었을까.
비가 멎은 충주의 오후,
나는 금을 밟은 것도, 주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지니고 있던 욕망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혹은 얼마나 집요한지—
그걸 잠깐 들여다 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비 오는 날, 그 절 다시 갈 거예요.
이번엔 사진기로, 아니…
확신 없이 반짝이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