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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누군가의 화면이 켜져 있었다.

브레인 JS

by 마루

새벽, 누군가의 화면이 켜져 있었다.

이름은 디지털 브레인 JS. 권한도 부족했고, 책임자도 아니었다. 그냥 보이는 사람이었다.

1억 번 넘게 내려받힌 코드 안에 뭔가 섞였다는 걸, 보안 시스템이 아니라 그의 눈이 먼저 알아챘다.

해커들은 서버를 뚫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관리자에게 CEO를 사칭하고, 화상 회의를 제안했다. 기술의 허점이 아니라 사람의 허점을 노렸다.

피곤한 밤, 상사의 목소리, 믿고 싶은 마음. 그 틈으로 독이 들어왔다.

시스템은 그걸 몰랐다.

1억 개의 연결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JS는 혼자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숫자 하나, 버전 하나. 1.14.1. 거기 심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 그의 심장이 어땠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젠가 탑이다.

코드 위에 코드, 신뢰 위에 신뢰. 탑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밑돌을 보지 않는다.

AI와 알고리즘이 우리를 대신해 지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 위에 우리는 매일 아침 아무런 의심 없이 노트북을 열고 코드를 내려받는다.

하지만 그날 새벽 문명을 붙잡은 건 시스템이 아니었다.

JS는 나중에 말했다.

“나의 감시는 끝났다.” 영웅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냥 지쳐서 침대로 들어간 사람의 말이었다.

그 짧은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밤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아무 문제 없이 코드를 내려받을 수 있었다면, JS의 새벽은 그냥 없었던 일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찍힌 사진은 클라우드로 올라가고, 클라이언트에게 링크가 전달되고, 누군가의 핸드폰 화면에 아이의 웃음이 뜬다.

그 경로 어딘가에 수천 개의 코드가 있고, 그 코드 어딘가에 누군가의 밤이 쌓여 있다는 걸 나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없다.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AI가 코드를 짜주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바이브 코딩. 말하면 만들어진다. 탑은 더 빠르게, 더 높게 쌓일 것이다. 밑돌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더 적어질 것이고, JS 같은 새벽은 더 외로워질 것이다. 해커들은 알고 있다.

탑이 높아질수록 사람의 피로는 깊어지고, 피곤한 사람은 전화 한 통에 흔들린다는 걸.

기계는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기계를 믿는다. 하지만 기계를 믿기로 결정하는 것도, 그 결정을 번복하는 것도, 결국 지치는 사람이 한다.

JS의 감시가 끝난 자리를 지금 누군가 이어받고 있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오늘 밤도 화면을 들여다보며 숫자 하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려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내일 아침 아무 일 없이 눈을 뜬다면, 그건 그 사람 덕분일지도 모른다.

고마운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게 연결의 비용이다.


작가의 말

3월 31일 새벽,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매주 1억 번 내려받히는 코드 안에 독이 심어졌습니다.

해커들은 서버를 뚫지 않았어요. 수 주에 걸쳐 신뢰를 쌓고, 화상 통화를 잡고, 음향 오류가 났다며 수정 파일을 설치하게 했습니다.

그 파일이 원격 접속 트로이목마였습니다.


독은 3시간 살아 있었고, DigitalBrainJS라는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코드를 모릅니다.

다만 오늘도 셔터를 누르고, 사진을 클라우드에 올리고, 누군가의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저의 하루가,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새벽 위에 얹혀 있다는 걸 이 사건을 통해 처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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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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